신문이나 블로그를 읽다보면 "진검승부"란 말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프로야구 아무개팀과 어무개팀이 우승을 놓고 진검승부를 펼치게 되었습니다...뭔 뜻으로 이 표현을 썼는지는 알겠지만 이 말을 접할 때 떠오르는 느낌이 영 못마땅하다.
이 말이 眞劍勝負(신깬쇼부)라는 일본 태생의 말이라서가 아니고 이 말이 주는 어감의 '섬뜩'한 기운이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접하면 살을 가르고 파고드는 쇠붙이의 서늘한 느낌과 잠시 보이는 살이 갈라진 틈, 그리고 그 안에서 베어 오르는 선혈이 자꾸만 연상되기 때문이다. 칼로 손을 깊게 베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오래전 "해당화 한가지를 베어 자웅을 겨루었다"는 고수들이 수련했다는 해동검도를 열심히 배우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해동검도의 위상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10년도 훨씬 더 된 그 당시에는 대한검도의 틈새를 비집고 "나한일"이란 유명인(?)을 필두로 전통검도란 이름으로 나름 세력을 넓혀가는 중이었다. 유단자들이 진검을 번뜩이며 무슨 무슨 검법이라 불리는 중국 무협영화에나 나올법한 검무를 시현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서릿발처럼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진검의 검기에 나 같은 하수는 보는 걸 만으로도 두려움에 움찔 움찔 몸을 떨어야 했다. 허공에 검법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그 지경인데 살기를 띈 두 검사가 상대를 베지 못하면 내가 베인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상대의 몸에 칼을 꽂을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몸서리 쳐지도록 섬뜩한 일이다.
격음과 탁음이 만연하는 세상을 살다보니 왠만큼 강한 느낌의 어휘가 아니고는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머리속에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가슴속이 서늘해져 오는 저런 표현들을 예사롭게 사용하는 것인가? 스치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그런 절대절명의 무시무시한 상황에 우리의 일상을 빗대 이야기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기자양반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음란물만 가지고 난리치지 말고 이런 지극히 XX스런 표현들에도 관심을 갖고 자제 좀 하자.
아무튼 진검승부(신깬쇼부)란 말은 너무 섬뜩하다. 왠만해도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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