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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Lv. 3

세계 인명사전의 허상과 실체


작년 11월에 Marquiz Who's Who in America 2009년 판에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의 10개월이 지난 9월말 최종적으로 등재가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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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된 사람이 사전을 주문하면 무료로 이름을 새겨 준다고 하더군요.


마르퀴스 후즈후 세계 인명사전은 (Marquis Who's Who), 미국인명정보기관(ABI, 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 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에서 발행하는 인명사전과 함께 세계 3대 인명사전이라고 알려져 있는 인명록으로 여기에 이름이 실리는 것이 가문의 영광인 것처럼 보도 되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2009년판 등재가 확정된 9월 즈음해서 신문 기사에 어느 대학 교수가 등재됐다더라, 어느 연구소 연구원들이 수십명 등재되었다더라 하는 뉴스가 등장하는 걸 보면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실리는 대단한 인명사전인 것처럼 보도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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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명 사전에 실린 유명인들 From: http://www.nytimes.com/


물론 노벨상 수상자나, 큰 연구 실적을 남긴 연구원, 세계적인 석학,포춘지 세계 500대 기업 임원등 쟁쟁한 사람들이 실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실린 사람들이 모두 출판사측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이나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저 자신이니까요.

1899년 오하이오 출신의 미국 출판업자 알프레드 넬슨 마르퀴스(Albert Nelson Marquis)가 미국의 전통을 보존할 수 있는 기록을 만들겠다며 창간한 이 인명사전은 110여년이 지난 2009년에는 제가 실린 Who's Who in America에만 11만명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고 주로 신문에 등장하는, 한국의 교수나 연구원들이 실리는 Who's Who in the World에는 6만여명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약 3000여명의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전에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3억 인구의 미국에서 선정된 11만명 중에 하나, 전세계에서 선정한 6만명중에 나 자신이 뽑혔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일 것 같지만 그 선정과정과 등재된 내용을 알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인명사전에 등재된 모든 사람들이 그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자격이 안 되는 수 많은 사람들도 이 인명 사전에는 함께 등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후보자 선정

먼저 작년 9월경 처음 연락을 받았을때 마퀴스측에서는 후보로 선정된 아무런 구체적인 이유 설명도 없이 그저 그동안 훌륭한 업적을 쌓았기 때문에 자시들의 2009년판 사전에 후보로 선정되었다며 제 인적 사항을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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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받았던 후보 선정 통보 편지


공연히 겸손한 척 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만약 제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로 "세계적인 권위"를 가졌다는 이 사전에 실릴 자격이 있다면 제 주변의 다른 연구원들 대다수가 여기에 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한 것보다 더 영향력있는 학회지에 더 좋은 논문을, 더 많이 개제한 수 많은 연구원들과 더 큰 연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거나 끝낸 사람들을 두고 제가 후보에 실렸다는 것은 한마디로 객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출판사측은 후보나 선정자들의 추천과 자신들의 조사에 의해 후보가 선정된다고는 하지만 저의 경우는 추천이라기 보다는 출판사 측에서 학회 논문발표 자료나 컨퍼런스 참가 자료를 가지고 후보로 선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 주변엔 저를 추천할 만한 사람도 없거니와 저 편지가 온 이메일 주소는 학회나 업무이외에는 사적으로 전혀 쓰지 않아서 스팸 메일 조차도 잘 오지 않는 업무용 메일이기 때문입니다.


검증과정

일단 후보 선정을 수락하고 나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입력하고 확인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선별을 한다고는 했지만 제 그동안의 연구 실적을 자세히 기술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적사항과 교육사항 그리고 학회,연구활동을 적기는 하지만 몇편의 논문을 썼고 어떤 연구를 했는지와 같이 후보자의 질을 판단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는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예전 뉴욕타임지의 인터뷰를 보면
편집팀에서 연구원 12명을 포함한 70명이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10여 개월동안 11만명의 자료를 검토하고 선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70명이 모두 하루 8시간씩 매달려 일주일에 5일씩 10개월을 다른 일은 하나도 안하고 선정과정에서 일했다고 하면 한 후보당 1시간 정도의 시간만이 할당되게 됩니다.

이 출판사가 발행하는 수십종의 다른 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최대한 많이 잡은 한 시간동안 각 후보의 업적을 평가하고 입력자료의 진실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실제로 뉴욕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도 후보자가 입력한 자료의 검증은 하지 않으며 그저 정확한 자료를 제출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고 한 것을 보면 후보자를 검증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앞에서 후보자나 과거 선정자는 다른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고 했는데 만약 제가 자격에 관계없이 제 동료와 친구들을 모두 추천한다면 그 사람들의 자격에 대한 검증은 필수적일 것입니다.만약 검증걸차가 이렇게 허술하다면 제가 추천한 친구와 동료들은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격이 있던 없던 얼마든지 최종등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1999년 포브스지에 실린 기사에서도 텍사스의 한 평범한 용접공이 1973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14년간을 이 인명사전에 실렸었다는 것을 보면 후보에 대한 검증,검토 절차라는 것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록자료

등재 후보들이 보낸 자료를 바탕으로 출판사에서 편집해서 사전에 최종적으로 인쇄하는 내용은 제 경우를 예로 들면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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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쇄되는 인적 자료 (제 개인신상에 대한 자료는 가렸습니다.)


약자로 처리해서 쉽게 알아보기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경력과 업적을 보면, 연구활동을 했고 전문 학회에 논문을 냈으며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활동을 했다고 정말 기초적인 내용만 간략하게 표시돼 있습니다. 그리고 직업도 단순히 전공분야의 엔지니어이며 연구원이라고 간략하게 실리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자료입력 과정에서 자세히 입력하기 않았기 때문인데 검토,검증 작업이 없으니 당연히 여기에 대해 아무런 추가 정보 요청을 받지 않았고 이렇게 허술한 자료로도 최종 등재가 된 것입니다.

포브스지의 기사중에는 일부러 존재하지 않는 학교와 엉터리 경력을 넣어 본 사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사람 역시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사전에 실렸다는 것을 보면  출판사측이 검토나 검증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결과 통보

했는지 안했는지 모를 검토 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등재가 확정되었다고 온 편지도 무슨 목적으로 보냈는지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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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등재를 알리는 편지 -광고인지 통보편지인지??


최종 선정을 축하한다는 인사말 3줄하고 사전을 등재된 사람에 한해 60% 할인해 준다는 광고의 글 13줄에 다시 2줄의 짤막한 축하인사, 그리고 마지막 추신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는 센스 만점의 광고까지...
선정 통보 5줄에 광고 14줄의 편지라면 아무래도 광고를 위한 편지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듯 싶습니다.

사전,기념품 판매

최종 결정이 났다며 사전을 팔기 위한 것으로 짐작되는 광고색 짙은 선정 통보 편지를 보내더니 그 이후에는 강매는 아니지만 아예 대 놓고 사전을 사거나 기념패를 사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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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판 인명 사전 주문서 일부 -사전을 사면 이름은 공짜로 표지에 찍어 준다네요.


그 인명 사전이라는 것이 가격이 참 비싸기도 합니다. 가죽 양장판은 가격이 무려 $830, 요즘 환율로 백만원이 넘습니다. 처음 편지에서는 그때 사지 않으면 할인해 주지 않는다더니 아직도 선정자는 60% 할인을 해 준다고 합니다.

정확히 얼마나 팔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749에 팔린 2006년판 같은 경우는 25,000권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60% 할인을 적용받은 것도 포함돼 있어 정확한 판매액은 알 수 없지만 대강 할인:비할인 비율이 반반이라고 하면 $1500만 달러로 달러당 1000원 환율로 계산하면 약 15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이 됩니다. 만약 25,000권 모두를 60% 할인해서 팔았더라도 $1123만 달러로 112억원의 매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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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판매외에도 출판사에서는 별의별 기념품을 다 판매합니다. 사전에 등재되기 위해서 사전이나 기념품들을 필수적으로 사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파는 기념품들이 품목도 다양한 것이 가격또한 만만치 않게 비쌉니다.

이외에도 지금까지 해마다 책을 출판하면서 누적된 140만명의 자료를 가지고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해마다 $1,800 (약 230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누가 이 서비스를 이용할까 싶지만 구글 검색을 해보면 의외로 상당히 많은 미국내 학교들과 도서관들이 온라인으로 이 사전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출판사에게는 또 다른 수익원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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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230만원짜리 웹 검색 서비스


이쯤되면 출판사가 이 사전을 해마다 출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수익모델이 이렇다보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사전에 등재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매출이 늘어날테니 해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사전에 등재된 사람들이 모두 자격 미달의 사람이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이 사전에 실린 많은 분들 중에는 정말 오랜시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와 남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이룬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대로 선정 절차라는 것이 너무 날림이다 보니 자격이 없는 사람조차도 버젓히 사전에 등재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신문들이 이야기하는 "세계적인 권위의 인명사전"이란 것의 진실성을 위심하게 합니다. 다른 인명 사전은 몰라도  Marquiz Who's Who 인명 사전의 이런 허술한 선정과정과 수익구조를 보면 아무리 좋게 봐도 이 인명사전이 110여년의 전통이 있다고는 해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출판물이라고는 인정하기 힘듭니다.

해마다 신문에 누가 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다가 실제 선정과정을 거쳐 보니 이 사전의 권위가 우리나라에서 너무 과대포장 되었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됐지만 부디 이 글이 오랜 시간 치열한 노력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업적을 이루신 분들께는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고자료

관심이 있으시다면 아래 링크된 포브스지와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특히 포브스지의 기사는 이 출판사에 개인적인 감정이 있지 않나 싶을 만큼 신랄하게 이 인명사전을 비판하고 있더군요.

http://www.forbes.com/fyi/1999/0308/063.html
http://www.nytimes.com/2005/11/13/fashion/sundaystyles/13WH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