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째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미국에서 보다 동전이 많이 생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물건을 살때마다 받은 거스름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주머니속에 넣고 다니다 보니 무겁기도 하고 걸을때마다 쩔렁거리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에 모두 쓸 요량으로 꺼내 놓고 세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캐나다에서 미국보다 동전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1와 $2달러 짜리 동전이 지폐 대신 쓰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도 $1짜리 동전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1짜리 지폐가 일반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우체국 자판기에서 우표 사고 거스름 돈으로나 받으면 모를까 잔돈으로 $1 동전을 받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하지만 캐나다는 1987년부터 $1 지폐를 없애면서 $1 동전을 유통시켰고 1996년부터는 $2 지폐도 역시 동전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지금은 $1와 $2는 지폐없이 동전만 쓰이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동전을 잘 쓰지 않는 습관이 미국에서보다 더 많은 종류를 동전을 모아 주머니를 무겁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쓰이는 동전 종류(50¢는 아주 희귀함)
현재 캐나다에서는 1¢, 5¢, 10¢, 25¢, 50¢, $1, $2의 7종류의 동전이 유통되고 있지만 50¢짜리는 희귀해서 시중에서 거의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원래 50¢ 동전은 많이 찍어 내지 않아왔기 때문에 귀한데다가 그 희소가치 때문에 동전 수집가들이 보이는 족족 수집해 버리는 통에 더 희귀해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1921년에 제조된 은으로 만들어진(은:80%,구리:20%) 50¢ 동전의 경우는 최상품이 수집가들 사이에서 $125,000 (약 1억 2500만원)에 거래될 정도로 귀하신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액면가의 25만배가 되다니 대단한 인기입니다.
위의 사진을 잘 보면 모든 캐나다 동전에 새겨진 인물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캐나다가 영국의 식민지였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당당한 주권 국가인데도 남의 나라 여왕의 얼굴을 동전에 새겨 넣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1982년 영국의회가 캐나다를 완전한 주권국가로 독립시켰지만 아직도 캐나다는 공식적으로 영국 연방 소속 국가이고 그래서 지금도 상징적인 국가 원수는 엘리자베스 2세이기 때문입니다.지금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결코 딴나라 여왕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부터 최근에 발행된 동전까지 죽 모아 놓고 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이 세월에 따라 달라져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0여년 전에 발행된 동전속의 풋풋한 외모의 앳띤 엘리자베스 여왕은 20여년이 흐른 뒤에는 중후한 중년 여인의 기품을 보여주더니 근래에 발행된 동전속에서는 후덕한 미소의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왕과 함께 동전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20대의 여왕 |
50대의 여왕 |
70대의 여왕 |
1952년 25살의 나이에 영연방 16개 국가의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2세는 여왕에 즉위하기 전인 20대 초반에 재미있는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전 손자 해리왕자가 아프카니스탄에서 군복무하고 복귀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지만 여왕은 공주시절인 1945년 세계 2차 대전에 운전병으로 참전했던 것입니다. 왕자가 군복무를 한다는 것도 우리나라 현실에 (?) 비추어 보면 의아한 일이지만 공주가 운전병이라니...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일입니다. 이런 경력들이 쌓이다 보니 지금은 영국 왕실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한대도 영국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가 봅니다.
세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여왕뿐만이 아닙니다.
캐나다 $1 동전은 흔히 "Loonie"라고도 불려지는데 그것은 동전 뒷면에 Loon이란 물새가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1달러짜리 동전을 연도별로 가만히 보면 1987년 처음 세상에 나왔을때부터 고요히 유유자적하며 헤엄만 치던 Loon이 드디어 20여년만에 날아 오른 것입니다. 20여년을 기다려 날아 오르다니, 백조가 된 미운 오리새끼도 아닌 것이 그 인내와 끈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캐나다 동전에서 발견한 숨어 있던 이야기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Two" 라는 말과 $1 동전을 의미하는 "Loonie"가 합성되서 만들어진, "Toonie"라고도 불리는 $2짜리 동전 뒷면에는 북극곰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동전을 모아 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니 북극곰의 가슴 아픈 사연이 구슬프게 전해져 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996년에 처음 만들어진 동전 속의 북극곰은 차가운 북극의 얼음판 위에서 추위와 외로움에 떨며 혼자 쓸쓸히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꽃피는 봄날, 노총각 북극곰도 재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예쁜 아기 곰도 낳아 알콩달콩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한 2000년을 맞았습니다. 2000년 동전속의 북극곰의 흐뭇한 미소가 보이는 듯 합니다.(돗보기로 자세히 보면 입가의 미소가 보입니다?)
하지만...캐나다 조폐국은 이 단란한 북극곰 가족의 행복을 질투했는지, 작년 발행된 동전속의 북극곰은 가족을 잃고 정처없이 북극의 겨울을 정처없이 헤매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세처럼 처량하게 가는 곳 모르고 떠내려가는 얼음 조각을 애처로이 바라 보는 북극곰의 눈가에는 서늘한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이건 현미경으로 봐야 보입니다.)
안그래도 지구 온난화로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저토록 슬프게 하는 캐나다 조폐국은 부디 각성 해서 내년에 발행되는 동전에는 잃었던 가족도 찾고 예쁜 새끼곰도 한마리 더 낳아서 네 식구가 단란하게 미소짓는 북극곰 가족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머니 속에 가득한 동전 덕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서 그 동전의 무게보다 훨씬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캐나다 조폐국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참고자료
http://www.royal.gov.uk/output/page4819.asp
http://en.wikipedia.org/wiki/Elizabeth_II_of_the_United_Kingdom
http://en.wikipedia.org/wiki/Canadian_dollar
http://en.wikipedia.org/wiki/Coins_of_the_Canadian_dollar
http://en.wikipedia.org/wiki/50_cent_piece_%28Canadian_coin%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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