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회사일로 바빠서 꼼짝을 못하다가 주말을 맞아 모처럼 시내 구경을 나갔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3월 17일인 성 패드릭의 날을 맞아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올해로 184회째를 맞는 몬트리올의 성 패트릭의 날 퍼레이드는 원조인 아일랜드 더블린(Dublin, Ireland)의 퍼레이드보다도 오랜 역사와 더 긴 행렬로 알려져서 일부러 관광객들이 이 퍼레이드를 보러 온다고도 합니다.저는 일하러 왔다가 아무 생각없이 시내 구경 나가서 보게 됐으니 완전 횡재한 셈입니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이 행진을 이해하려면 녹색, 세잎 클로버, 그리고 맥주가 패트릭 성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분이 |
이렇게 되시니 과연 좋아하실까요? |
성 패드릭은 4세기말 기독교를 아일랜드에 전한 아일랜드의 수호 성인입니다.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피해 캐나다로 이주해 온 초기 이주민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공동체가 번성하게 되자 이것을 축하하고 자기들을 보살펴 준다고 믿는 이 성자를 기리기 위해 퍼래이드와 축제를 벌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일랜드 사람들만의 축제였지만 이제는 멕시코,중국,우크라이나 사람 가리지 않고 몬트리올 사람들이라면 즐겁게 참여해서 다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퍼래이드 내내 줄곧 등장하는 세잎 클로버는 아일랜드의 심볼이며 동시에 패드릭 성인이 성 삼위일체의 상징으로 이야기한 문양입니다. 더불어 서양사람들에게 세잎 클로버는 행운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겐 네잎 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인데 서양 사람들에겐 세잎 클로버가 행운을 상징한다니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의미도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녹색은 바로 이 세잎 클로버의 색깔로 퍼레이드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녹색옷을 입거나 녹색모자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몬트리올 시에서는 이 날 퍼래이드를 위해 도로 바닥까지 녹색으로 칠했지만 바닥에 쌓인 눈 때문에 대부분 지워지고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는 길거리에서 파는 플라스틱 나팔도 녹색입니다. 원래 이 날을 상징하는 색깔은 원래 파란색이었는데 아일랜드의 국기에 녹색이 쓰이면서 바뀌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2005년 시카고에서는 강물을 녹색으로 물들이는 짓(?)까지 했다고 합니다 (출처:위키페디아)
그리고 일부 엄숙하신 카톨릭계의 성직자들은 이날 맥주를 마셔대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맥주를 들고 마시며 즐거워 하는 모습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습니다. 축제에 음주가무가 빠지면 안 되겠죠?
그래도 4시간이 넘게 계속된 퍼레이드에 30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지만 사고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경찰에 접수된 단 한건의 신고도 두 패의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에게 소리를 지르다 경찰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하는 걸 봐서 비록 맥주캔을 손에 들고 퍼래이드에 와도 취하도록 마시는게 아니라 축제의 흥을 돋우는 정도만 마시는 것 같습니다. 실제 술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원래 이 기간은 부활절을 앞두고 경건하게 보내야 할 시기이지만 전통적으로 사람들은이날 맥주를 즐기며 축하해 왔다고 합니다. 또한 일설에는 성 패트릭의 날이 3월 17일인 로마의 박카스 축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흥겹게 술을 마시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길거리에서 맥주 한캔을 들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즐겁게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시죠.
(버퍼링 때문에 동영상 보기에 문제가 있는 분들을 위해 Youtube에도 올려 두었습니다. 단 Youtube 버전은 해설이 없습니다.)
뉴스에서 이날 30만명이 퍼래이드를 보기 위해 모였다는데 정말 사람 많았습니다. 인구 400만이 조금 안 되는 몬트리올에서 30만명이 모였다면 거의 13명중에 한명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셈이되나 봅니다. 기온은 영하 2도 정도에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아서 여기 사람들은 "Warm"한 날씨라고 했지만...저는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서 코 밑이 얼얼해질 때까지 콧물을 닦아야만 했습니다. 따뜻한 텍사스에 살아와서 그런지 도저히 적응이 안되고 있습니다.
동영상에도 등장하는 패트릭 성인을 희화한 커다란 인형입니다. 녹색 옷을 입고 세잎 클로버로 장식된 트럭을 타고 오네요. 오늘을 상징하는 것은 맥주빼고 모두 있네요.
동영상에서 물통위에 앉아 덜덜 떨고 있던 아저씨는 혼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김이 모락 모락나는 수족관(?)을 여자 동료에게 양보하고 덜덜 떠는 아저씨가 참 안스러웠습니다. 아무리 따뜻한 날씨라고 해도 영하 2도에 아무것도 안 결쳤는데...그렇다고 저 좋은 통속에 한 덩치하는 두 사람이 수영복만 입고 함께 들어가 있는 것도 보기 민망할 것 같습니다. 저 아저씨 퍼래이드 끝나고 감기 걸렸을 것만 같지만 스킨 스쿠버 다이빙 강습 광고는 효과 제대로 봤을 것 같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먹을 거리가 빠지면 안 되겠죠.
한국처럼 뜨끈한 오뎅국물에 떡볶이는 없었지만 대신 기차(?)에서 구워파는 군밤은 있었습니다. 옆에 가니까 구수한 냄새는 진동을 했지만 별로 먹고 싶진 않더군요. 맥주라도 함께 판다면 모를까...
퍼레이드가 끝나고 돌아서서 가는 연인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둘이 커플로 팬티를 밖으로 입었더군요. 그럼 안에는 안 입은 걸까요? 글쎄요...감히 물어볼 용기가 없어서 사진만 찍고 말았습니다.
한가지 아쉬었던 점이라면 중국 이민자들은 수가 워낙 많아서인지 파륜공 사람들 만으로도 가장 많은 인원을 참석시켜 자기들의 세를 뽑냈지만 정작 한국 교민들은 퍼레이드에서 볼 수 없었다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잔치에 왜 참석해야 하느냐는 물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몬트리올의 이날 퍼레이드는 아일랜드 연합 모임에서 주관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온 시민들이 참여하는 축제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도 말한 것 처럼 인종,종교를 가리지 않고 참석해서 떠들썩하게 즐기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물놀이패라도 참석해서 한바탕 신명나는 사물놀이판을 벌여 줬더라면 백파이프 연주보다도 더 흥겨웠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몇 시간을 덜덜 떨며 퍼레이드를 쫓아 다닌데다가 우리 교민들도 참석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 때문에 꽁꽁 얼어 버린 몸과 마음을, 얼큰한 해장국으로 녹여 보겠다는 일념으로 지하철을 두번 갈아 타고도 버스를 한번 더 갈아타고 찾아간 한국 식당 간판의 태극기는 뜨근한 국물을 들이키지도 않았는데 왠지 가슴 한켠을 쏴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왠지 뭉클한 것이 얼어 붙었던 마음이 뜨거워 지는 것 같습니다. 이놈의 악착같은 입맛 만큼이나 제가 한국사람이라는 사실도 바꿀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내년 행사에도 참석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몬트리올 한인 사회의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높아지고 퍼레이드에서 몬트리올 사람들에게 한국의 신명나는 사물놀이를 선보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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