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도 거의 최악이라고는 하지만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이번 경제 위기의 주범 , 미국 또한 진원지답게 온 나라가 경제 문제로 힘들게 허덕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살기 힘든 요즘, 거기에 더해 직장에서는 정리 해고의 칼바람까지 불어 매일 매일 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어 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점점 더 깊어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뉴욕에서 실업자들이 모여 당당하게 실직자 올림픽(UNEMPLOYMENT OLYMPICS)을 개최한 것을 보면, 이제는 실직은 개인의 능력 여부를 떠나 경기 침체때문에 피할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현상으로 인식될 정도로 일반적이 일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직자 올림픽 안내 사이트 (From: http://www.unemploymentolympics.com )
그래도 그동안은 뉴스에서 경기 침체다 실업률이 8.5%에 달했다고 떠들어도 제 주변엔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여 그리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지만 며칠전 정리 해고를 당해 회사를 떠나는 직장 동료가 보낸 이 메일을 받고는 이제 경제 위기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내 발등에 떨어진 절박한 상황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나며 이 모든 일들이 신께서 더 큰 뜻을 갖고 정한 일이라며 담담히 받아 들이려 하는 그가, 회사가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모든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아도 되도록 기도하겠다는 하는 대목에선 공연히 코끝이 시큰해 졌습니다.
얼마전 뉴욕에서 IBM에서 정리해고 된 실직자의 총기 난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람처럼 자신의 실직을 신이 더 큰 계획을 위해 자신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실직은 누구 탓일까요? (from: http://news.yahoo.com/nphotos/Unemployment-Olympics/)
이 사람이 떠나간 후 지난 주말까지, 전체 오피스 직원의 10% 가까이 되는 동료 직원들이 정리 해고로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사실 제 머리속에는 직장을 잃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연민보다는 '그래도 나는 회사에 남게 되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떠나면서도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던 그의 마음 씀씀이와 저의 알량한 이기심이 비교가 되는 것 같아 더욱 창피해 집니다.
제 주변의 미국 사람들은 엉망이 된 경제를 걱정하긴 하지만 때로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여주곤 해서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합니다. 아직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세계 최강이라 여기는 미국인들이다보니 이 정도의 경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할리 없다는 믿음이 마음속에 깔려 있기 때문인지 신문,방송에서 떠드는 것보다 제가 주변에서 체감할 수 있는 경제에 대한 우려는 덜할 것 같습니다.
몇달전 저녁 식사를 함께 했던 중년의 미국인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신들이나 자신의 부모 세대는 이미 이런 경기 침체를 몇번 겪었기 때문에 이런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덧붙여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겪어 보지 않아서 자신들보다 더욱 고통스럽게 느낄 거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어찌보면 제가 만난 그 한 사람만의 생각일수도 있지만 지난 수십년간의 미국 경제를 돌아보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정의가 다르긴 하지만 여러 경기 지표들을 고려해 공식적인 경기침체를 규정하는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발표를 보면 2차 대전이후 지난 60여년간 미국은 여러차례의 경기 침체를 겪었고, 그때마다 실업률이 치솟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지만 그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안정을 되 찾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아마 이런 과거의 경험들이 나이 지긋한 중년 미국인들에게 이번 경기 침체도 그런 순환 과정에 불과하며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아 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게 하나 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낙관론의 바탕에는 자신의 나라가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굳은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그들의 생각처럼 과거처럼 길게 잡아도 1-2년만 견뎌내면 미국 경제가 다시 살아날까요? 1년전인 작년 3월 26일 "미 경기침체는 가능성이 아니라 기정사실?"이란 글을 쓸때만 해도 경기가 좋아 질 것 같은 기미가 보인다는 여러 단서들이 거론됐지만 지금 돌이겨 보면 그때의 경제 위기는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가지로 예전보다 노쇠한 모습을 보이는 미국이 이번 경제 위기를 과거처럼 그렇게 극복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예측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낙관론보다 비관론에 더 무게를 실어 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서 빨리 바닥을 치고 정상을 찾아 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지금처럼 하나, 둘로 시작해서 10%씩 감원이 되다보면 언젠가는 그 중에 제 자신 또한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절박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실업통계
http://www.bls.gov/CPS/
경기 침체 통계
http://wwwdev.nber.org/cycles/cycles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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