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되는 분이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팔아 달라고 부탁 하셨습니다. ebay에 내놓을까 했지만 예상 가격이 워낙(?) 고가여서 ebay 판매 수수료가 만만치 않게 나올 것 같아 미국판 벼룩시장이랄 수 있는 Craigslist에 내 놓기로 했습니다.
중고이긴 해도 $1500 정도의 엄청난(?) 가격에 거래를 원하셔서 과연 누가 사겠다고 나설까 했지만 올리지 몇시간 되지 않아 사겠다는 이메일이 날아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편지를 열어보니 사연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자신은 지금 미국에 있는데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라오스에 있는 자신의 딸에게 이 작고 깜찍한 노트북을 선물로 보내 주고 싶다는, 정말 부성애가 절절 끓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었습니다. 그것도 내놓은 가격인 $1500불이 아니라 거기에 $200불까지 더해서 $1700불을 줄때니 꼭 자기에게 팔라는 것입니다.
선물찾아 삼만리...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라면 선물을 찾아 지구끝까지라도 갈 것 같은 이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살면서도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는 제 모습이 겹쳐,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 받을뻔 했습니다. 꼭 $200불을 더 준데서가 아니라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이 아버지의 선물을 찾는 고단한 세계여행(?)을 끝내주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에게 꼭 팔고 싶었습니다.
감동적인 부성애를 가진 이 사람은 거래도 신속하고 깔끔한지 팔겠다는 메일을 보내자 얼마 안 있어 곧바로 $1700불이 송금됐다는 송금 내역 확인 메일이 저에게 날아왔습니다. 제 돈은 아니었지만 통장에 들어왔을 돈을 생각하며 정말 세상에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세상은 더 밝고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제 돈을 받았으니 날이 밝는대로 우체국에 가서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자랐을 그 사람의 딸에게 노트북을 보내주면 그 가족의 행복과, 나아가 세계 평화 증진에 저 또한 작게나마 일조할 것 같은 뿌듯한 마음에 공연히 흐뭇해졌습니다. 이래서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곳인가 봅니다.
그런데...
송금 확인 메일을 보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대금으로 받은 송금 확인 메일
메일 제목만 보고는 ebay로 돈이 들어왔구나 했는데 자세히 보니 이베이(ebay)가 아니라 이페이(epay)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정말 국제송금을 서비스하는 epay라는 회사가 있더군요. 잠깐이나마 아름다운 부성애가 넘치는 이 사람을 의심한 것이 미안해 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의심은 의심을 부른다고 한번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송금 확인 메일을 꼼꼼히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다보니 발신인이 좀 이상합니다. 편지 내용은 epay라는 회사에서 저에게 송금확인 메일을 보낸 것인데 보낸 사람이 야후(Yahoo)아이디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국제간에 송금을 서비스하는 회사에서 변변한 메일 서버도 없이 야후 메일로 고객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째 이상합니다.
다시 편지를 보니 편지안에 입금을 확인할 수 있는 링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epay라는 회사를 알지 못하는 제가 어떻게 돈을 찾을 수 있는지 설명한 줄 없고 직접 입금을 확인 할 수도 없다니 이제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수상합니다.
한번 더 확인해 보자는 생각으로 편지에 들어있는 사진들이 링크된 서버 주소를 살펴보니 제일 위의 그림은 epay 회사의 서버에 올라와 있는 그림이 맞는데 두번째 달러가 휘날리는 사진은 엉뚱하게도 호스팅 서비스를 임대해서 쓰고 있는 개인 계정으로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혹시나 해서 서버의 주소를 따라 접속해 보니 어떤 사람이 개인적인 용도로 온갖 잡다한 파일들을 올려 놓고 쓰고 있더군요.
이쯤되면 바보가 아니라도 가짜 송금확인서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부성애를 가진 사람으로 알았던 그는, 제가 내 놓은 노트북을 날로 먹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미국까지 비록 인터넷이긴 해도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온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기꾼이었던 것입니다.
아~ 역시나 세상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 맞는가 봅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 10,000km나 떨어진 곳까지 접속해서 사기를 치려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정말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에 이런 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명의를 도용당한 또 다른 피해자 일 수 있어 이름과 얼굴을 가렸습니다.
가끔씩 자기 아버지가 정치적 문제로 암살 되기전에 숨겨 놓은 엄청난 액수의 금괴를 되찾는데 협조해 주면 얼마를 주겠다거나 자기 은행에 주인 없는 돈이 예치돼 있는데 돈 세탁을 위해 은행 계좌를 빌려주면 수십억에 달하는 수수료를 주겠다고 하는 허무맹랑한 나이지리아산 스팸 메일을 받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워 버리고 말았지만 나이지리아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이뤄지는 이런 인터넷 금융 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가 봅니다.
어제 콜로라도 덴버에서는 남의 빈집을 세 준다고 Craigslist에 광고를 내고 연락해 온 사람에게서 보증금을 나이지리아로 송금받아 가로채려한 일이 황당한 일이 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봉이 김선달도 이 일당들 앞에서는 You Win!! 이라고 한 수 접고 고개를 숙일 만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21세기인 오늘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지난달 오리건에서는 한 중년 부인이 나이지리아에서 온 이메일에 속아 몇년에 걸쳐 $400,000(약 6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사기당한 일이 보도 되기도 했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철자법도 틀린 메일에 속아 6억원을 사기 당한 아줌마
응급소생술을 가르치는 간호사로 일하는 이 부인은 오래전 실종된 자신의 할아버지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그 앞으로 $2천만불(약 300억원)이 남겨져 있다는 메일을 진짜로 믿고 그 돈을 상속받는데 필요한 수수료 명목으로 몇 년동안, 남편이 노후 자금으로 준비한 돈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집까지 저당 잡혀 나이지리아로 송금을 해 온 것입니다. 더 답답한 일은 이런 일이 계속되자 남편은 물론 가족들과 은행 직원들까지 나서서 송금을 말렸지만 이 부인이 혹시나하는 의심을 품을 때마다 가짜 나이지리아 은행, FBI 국장, 나이지리아 대통령, 심지어는 미국 부시 대통령까지 등장해서 그 돈을 나이지리아에 남겨두면 테러리스트들이 쓰게 되기 때문에 되찾아야 한다는 격려 편지를 보내 부인은 의심의 여지 없이 철석같이 믿고 송금을 계속 해 온 것이라고 합니다.
흔히 등장하는 상속을 위해 수수료를 요구하는 나이지리아 은행의 가짜 편지(From: 미 국무부 홈페이지,http://travel.state.gov)
정말 이런 얼토당토 하지 않은 스팸 메일을 믿고 거기에 속아 돈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나이지리아의 사기꾼들을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국정원의 언론 보도 자료를 보면 해외 한인들을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2005년에 나이지리아 금융사기로 25건, 약 $200만 달러(약 30억원)의 피해를 입었고 2006년에는 30건의 사기를 당해 $240만 달러(36억원)의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걸 보면 그들의 사기 대상에는 국경이 없습니다.아마 그들이 한글로 이메일을 쓸 수 있는 인재(?)까지 확보한다면 그 피해는 더욱 커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온갖 황당한 거짓말로 전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나이지리아 금융 사기꾼들에 맞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정말 세상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중 "사기꾼들을 낚는 낚시꾼"(TSB:The Scam Baiter)이라는 인터넷 포럼에는 인터넷상에 ANUS Laptop이라는 진짜처럼 보이는 컴퓨터 가게를 차려 놓고 나이지리아 사기꾼들을 혼내주는 사람들의 통쾌한 무용담이 넘칩니다.
ASUS가 아닙니다.사기꾼들을 유인하는 ANUS 컴퓨터 (From: http://www.anuslaptops.com)
회사 이름이 요즘 넷북으로 인기 높은 EeePC를 생산하는 ASUS가 아니고 냄새나는 ANUS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까지 많은 나이지리아 사기꾼들이 사기치려고 접근했다가 도리어 이들에게 속아 자신의 정체가 인터넷에 공개되는 것은 물론 상당한 금전적인 손해까지 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나이지리아 사기꾼들을 골탕 먹이는 방법은 사기꾼들의 사기 수법을 교묘하게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사기꾼들은 흔히 자신들이 컴퓨터 판매업을 하는 것처럼 가장해 접근해서 많은 댓수의 랩탑을 주문 하고는 물품 대금보다 더 큰 액수가 적힌, 정밀하게 위조된 가짜 수표를 보냅니다. 그리고는 수표가 은행에서 가짜로 판명 나기전에 연락해서 자신들의 실수라며 과다 지급된 차액을 빨리 송금해 달라고 재촉해서 그 돈을 가로채는 수법을 씁니다.
낚시꾼에 속은 나이지리아 사기꾼의 굴욕(From: http://www.thescambaiter.com)
하지만 이 "사기꾼들을 낚는 낚시꾼"들은 한술 더 떠 그 수표가 은행에서 지급되었다고 하고 주문받은 컴퓨터에다가 차액 만큼의 컴퓨터를 더 보내 주겠다며 사기꾼들을 속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사기꾼들이 운송료와 관세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와 부서진 컴퓨터를 넣어 최대한 무겁게 만든 가짜 컴퓨터 박스를 운송료가 가장 비싼 특송(Over night Delivery)로 보냅니다.
한편 자신들의 사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성공적으로 먹혀 들었다고 생각한 사기꾼들은 그 컴퓨터 상자를 가로챌 욕심에 비싼 운송료와 관세를 물고 그 컴퓨터 상자를 배달받지만 그들이 상자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정말 냄새나는 물건들 뿐입니다.
일이 이쯤되면 사태를 알아 차리고 포기해야 하건만 이미 수천달러의 운송료와 관세를 지불한 사기꾼들은 이제는 그동안 그들이 사기쳐 오던 사람들처럼 손해 본 돈과 더 큰 한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포장부서 직원들 장난으로 버려야 할 물건이 잘못 갔다는 낚시꾼들의 말을 믿고 이번에는 제대로 된 물건이 오길 기다립니다. 하지만 또 다시 수천달러를 내고 쓰레기를 받은 사기꾼들은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이제는 낚시꾼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가 됩니다. 사기 치려다가 된통 걸린 것이지요.
물건을 보내지 않으면 자신들이 고용한 킬러를 보내겠다고 협박도 해보지만 낚시꾼들은 겁먹은 척 제발 살려달라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를 위해 벌거벗은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 위의 사진처럼 양동이를 뒤집어 쓴 채 "제발 ANUS 랩탑을 보내주세요~"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어 보내라, 심지어는 자신들이 파는 ANUS 컴퓨터의 광고를 찍어서 보내라는 등의 요구를 하며 사기꾼들을 마음껏 조롱합니다.
이런 식으로 몇번이나 싫컷 나이지리아 사기꾼들을 골탕 먹인 후 낚시꾼들은 받았던 가짜 수표와 낚시꾼들에게 속았음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고 나서 사기꾼들이 하는 것처럼 연락을 끊어 버려 사기꾼들을 패닉상태에 빠뜨려 버립니다.
낚시꾼들에게 속아 나이지리아 사기꾼들이 만든 ANUS 컴퓨터 광고
평소 저의 지론대로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기꾼과 다시 그들을 조롱하며 혼내주는 사람들까지...하지만 다시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의 내면에서는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정당한 금전적 이익 이상을 추구하는 탐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만약 오리건의 부인이 수십억원의 유산을 되돌려 주겠다는 사기꾼들의 감언이설을 무시했더라면, 나이지리아의 사기꾼들이 사기로 한탕을 하겠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런 곤욕을 치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몰기지 파동이 전 세계로 파급된 경제 위기도 결국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정당한 댓가 이상의 부를 추구한 탐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저 또한 물질을 향한 욕망이 위에 등장한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으니 이번에는 운 좋게 피했지만 결국 언젠가 이런 사기를 당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자료
http://travel.state.gov/pdf/international_financial_scams_brochur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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