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의 미국 44대 대통령 선거를 13일 앞두고 미국 방송에서는 하루종일 대선후보들의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결국 누가 당선이 되던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거나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탄생한다는 역사적 기록을 세우게 되는 의미가 있다지만 오바마와 힐러리의 끝날 것 같지 않던 지루한 민주당 예비선거이야기까지 합치면 뉴스와 신문들은 거의 1년 내내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로 떠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의 미국 경제 위기로 온 세계가 출렁이고 있는 가운데서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중요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상,하원의원(하원의원 435명과 상원의원 35명)도 선출하고 11개주의 주지사도 함께 선거하기 때문에 더욱 역사적인 선거가 될 것 같습니다.
요즘 발표되는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기관마다 다르긴 해도 민주당의 오바마후보가 공화당의 맥케인 후보를 13%이상의 차이로 앞서고 있기 때문에 남은 13일의 선거운동을 별 무리없이 마무리 한다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fter: http://elections.nytimes.com/2008/president/whos-ahead/polling/index.html#US_1
조중동에서는 그 실체가 확실치도 않은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를 들먹이며 오바마가 지금의 우세를 잃고 선거에 질 수도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지만 남은 기간동안 결정적인 악재가 터져 나오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가 뒤집히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단순히 지지율만 보면 두 후보중 한 사람을 뽑는 선거이다 보니 오바마 후보의 50% 지지도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이상한(?) 선거 제도를 감안해서 각 주별 여론 조사 결과를 선거인단 수로 환산해 보면 오바마 후보의 우세를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2008년 10월 23일 AP 조사
비록 위의 결과가 최종 결과가 아닌 여론조사 결과이기는 해도 그동안 몇번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아왔던 저에게는 낯선 결과가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지역 감정 같은 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주별로 지지하는 정당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어서 매번 대통령 선거를 할때마다 위의 그림과 비슷한 결과를 보여 왔다는 말입니다.
(1992년부터 2004년 선거까지 각 주별 투표 결과)
그림을 눈여겨보면 15개 정도의 주를 제외하고는 35개의 주(워싱턴 DC는 제외)는 매번 선거때마다 흔들림없이 공화당이면 공화당, 민주당이면 민주당만 줄기차게 찍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략 동부와 서부 해안주변의 주들은 민주당을, 텍사스를 비롯한 중부의 주들이 일관되게 공화당을 찍는 것은 각주의 일관된 정치적 성향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무척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굳건하게 한 정당에게만 표를 주는 35개 주들과 선거때마다 다른 15개 주들
각 주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위의 지도와 주별 여론 조사 결과를 선거인단 수로 환산한 지도를 비교해 보면 오바마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인 주들 모두에서 우위에 있고 1992년 이후 2번의 중간선거를 포함한 4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던 버지니아(Virginia,VA,13표)에서까지 앞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맥케인 후보는 버지니아에서 선두를 빼앗긴 것은 물론, 지난 4번의 선거에서 공화당을 지지했던 노스다코타(North Dakota,ND,3표), 플로리다(Florida,FL,27표),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NC,15표)에서까지 우위에 차지하지 못하고 여론조사 오차율 이내의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습니다.
부시야 한국에서처럼 제발 당을 나가 다오~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국민이 자신들의 대통령을 뽑는 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간단명료한 직선제 선거를 하는 우리와는 달리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을 뽑고 이들이 다시 투표를 해서 대통령을 결정하는 간접선거를 고집하는 미국의 선거제도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이 많습니다.
5공 전두환 대통령때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고 그냥 계속 체육관 선거라 불리는 간접선거를 하겠다고 했을때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 "호헌철폐"를 외쳤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합리성에 목매는 미국이 21세기의 현실에 비추어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 간접 선거제도를 계속 고집하는 것이 참 불가사의 하게 느껴집니다.
더구나 지난 2000년 민주당의 앨고어 후보가 48.6%의 득표를 해 현 대통령인 조지 부시 후보의 득표율 48.3%를 앞서서 총 득표수에서 35만표나 더 많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을 겪고 나서도 허점 많은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미 대통령 조지 부시
하긴 정작 원산지인 영국도 쓰지 않는 파운드와 화씨같은 남들 안쓰는 단위를 계속 고집하는 미국인이니, 그들만의 합리성이 보편적 합리성에 맞지 않는다 토를 단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별로 볼 것도 없는 자신들의 전통을 금과옥조처럼 떠 받드는 이 사람들은 아마 이 사람들은 누가 뭐라하건 계속 자기들 좋을 대로 하며 살 것 같습니다.
사연도 구구절절한 투표일
미국 대통령 선거의 투표 날짜부터 살펴보면 투표일이 한국처럼 오락가락하지 않고 "11월 첫번째 월요일의 다음날인 화요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1845년 미국 의회에서 일요일은 교회에 가야해서 안되고,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과 금요일은 빼고, 목요일은 영국의 선거일이니까 안된다고 제외하고 남은 화요일과 수요일 둘 중 하나를 골라잡아 정해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11월 초보다 늦게 투표일을 잡으면 눈이 내려 투표하러가기 힘들고 더 일찍 투표일을 잡으면 농사에 지장을 줄 것 같아 11월 첫번째 화요일로 정했지만 만약 그날이 11월의 첫날이 되면 여러가지 일들로 바빠 선거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해서 "11월 첫 월요일 다음날인 화요일"에 투표한다는 알송달송한 규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복잡한 이유로 정해진 선거일이 올해는 11월 4일로, 선거등록을 한 미국인들이 오바마, 맥케인 둘 중 하나를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투표를 합니다. 하지만 선거를 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뽑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538명의 선거인단입니다. 그냥 그 결과로 대통령을 선출해도 좋으련만 이 538명의 선거인단은 다시 "12월 둘째 수요일 다음 월요일"인 12월 15일, 각 주의 의사당에 모여 자신이 위임받은 정당 후보에 다시 투표해서 대통령 후보를 결정짓습니다.
538명이라는 선거인단의 수
선거인단의 숫자가 538명으로 정해 진 것도 미국이니까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 의회는 각 주의 인구 비례에 따라 정해지는 435명의 하원의원과 인구에 관계없이 각 주당 2명씩을 선출하는 상원의원 100명으로 구성되는데, 선거인단의 수를 상,하원 의원을 합한 535명에 워싱턴 DC는 주는 아니지만 수도라고 봐줘서 3 명의 선거인단을 배정해서 538명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각 주당 정해진 선거인단의 수가 첫번째 지도에 표시된 숫자(Electoral Vote)입니다. 그러니까 각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의 수에서 2를 빼면 그것이 그 주의 하원의원 인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거인단 수를 정하다보니 자연히 인구가 많은 주는, 많은 선거인단이 배정되고 인구가 적은 주는 최소 3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되게 됩니다.
국민 투표후의 복잡한 절차
이렇게 선거인단을 뽑고 그들이 다시 투표를 하는 것은 마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뽑아서 그들이 다시 대통령을 선출하던 우리나라의 옛날 선거제도하고 비슷한 방식인데 더 재미있는 것은 투표일날 유권자들이 투표용지에 기표하는 것은 선거인단 후보가 아니라 자기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찍었는데 정작 선출되는 것은 선거인단인 것입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1972년 12월 23일 (From: http://www.ehistory.kr)
더 황당한 것은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가 결과가 바로 개표되는 것이 아닌데도 누가 당선됐는지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단 선거인단을 뽑는 선거에서만 이기면 각 후보가 확보한 선거인단수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이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 것으로 인정되지만 법률상으로는 선거인단의 투표가 개표되어야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선출된 선거인단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투표를 하는 아니라 그 주에서 승리한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유권자들의 투표로 뽑힌 선거인단이 자신이 투표하기로 정해진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후보에게 투표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선거인단이 자기가 찍기로 되어 있는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찍은 일은 아홉번 있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뜻에 따라 투표를 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그 선거인단의 표는 유권자들의 표보다 우선시 되서 유효하게 됩니다.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결국 선거인단의 뜻이 주민의 뜻보다 우선시 되서 선거인단의 표가 법률적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유권자들의 투표가 직접적인 법률적 효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 하원 의회
최종적인 법률적 효력을 갖는 이 선거인단의 투표는 투표가 끝나도 바로 개표되는 것이 아니라, 된장,고추장 담는 것도 아니면서 내년 1월 6일까지 푸욱 묵혔다가 그때서야 개표해서 과반수(538명의 과반수 270명)를 획득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확정되고 내년 1월 20일에 취임선서를 하고나면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후보도 선거인단의 과반수인 270표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의회로 가서 하원에서 다수결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정말 이런 황당한 일이 정말 발생할까 싶지만 1800년 선거에서 딱 선거인단 절반의 득표를 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후보가 하원의 투표에 이겨 미국 3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예가 있습니다.
행운의 사나이 토마스제퍼슨 $2 행운의 지폐에 영원히 잠들다.
이긴 사람 몰아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득표율로 나누기까지.
여기까지만 해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복잡성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인데 각 후보가 자신에게 투표할 선거인단을 차지하는 방식 또한 황당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그 주에서 한표라도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에게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이 몽땅 주어지는 승자독식(Winer Takes All)제도를 채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미국이라는 이름으로 주들을 묶어 건국한 그 당시의 느슨한 연방제 상황에서 각 주가 자신들만의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는 상징으로 단 하나의 대통령 후보를 내세우기 위해 선거인단 전체를 독식하도록 정한 것입니다.
건국 당시 미국 연방과 영토 확장
이 덕분에 조지 부시 후보가 전체 유권자들의 지지는 앨 고어 후보보다 적게 얻고도 플로리다에서 이겨 배정된 전체 선거인단 27명의 표를 독식하면서 4표차로 역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예외가 있어서 모든 주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승자에게 몰아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네브라스카(Nebraska,NE,5표)와 메인(Maine,ME,4표)주에서는 다른 주들과 달리 각 정당의 득표수를 고려해 선거인단을 나눠 갖는, 다른주와는 다른 제도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 두 주에서는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중 2명은 그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나머지 선거인단은(네브라스카는 3표, 메인주는 2표) 의회 선거구를 기준으로 해당 의회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방식입니다
(여우별님께서 인구비례를 고려하고 있다고 볼수는 있지만, 정확히 보면 후보의 득표수 대로 선거인단 표를 나누는다는 건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해 주셔서 추가합니다.)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나라의 정치를 200여년 넘게 지탱해 왔다는 선거제도가 이렇게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것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미국 건국 당시 각 주가 연방에 속해 서로 다른 법률과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각 주의 독립성을 강화하면서도 분열되지 않게 묶고, 인구가 많은 주의 독주를 막으면서 작은 주의 권리도 보호해야한다는 복잡한 정치적 문제의 공통해를 구하려다보니 생긴 결과입니다. 또한 그 당시의 정보통신 기술로는 광활한 전 국토에서 동시에 전국적인 직접선거를 한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의 뜻을 모아 선거인단을 뽑아 재 투표하는 간접선거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많은 부작용들을 보면서도 그 제도를 바꾸지 않고 유지하는 미국인들을 보면 다시 한번 고개가 갸우뚱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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