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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Lv. 1

미 축산업계에 보내는 휴스턴 한인회의 탄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주장하는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가운데에서도 미국과의 재협상은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가져오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귀를 막고 모르쇠~ 버티기로 일관하던 정부가 결국 재협상 대신 "추가협상"으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 보겠다고 협상단을 보냈습니다.

일단 가서 뭔가를 해 보겠다며 호기롭게 미국을 향해 떠난 협상단은 귀국 한다고 했다가 무슨 일인지 다시 며칠 더 머물겠다고 하며 오락가락하던 끝에 뭘 어떻게 합의 했는지 아직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무튼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는 않도록 하는데에는 합의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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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의 USTR 청사로 들어가고 있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국민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신임 대통령이 세번째 대국민사과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첫 단추를 잘못 꽨 협상덕에 추가협상단은 일정까지 변경해 가며 헐레벌떡 바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미심쩍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점에 추가협상단과 정부를 위해 홀연히 나타난 구원투수가 있었으니...바로 휴스턴 한인회입니다. 지난번 휴스턴 한인회장의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캠페인에서 '그동안 미국 쇠고기 쭈욱 먹고 살아왔는데 아무렇지도 않더라 그러니까 고국의 동포 여러분도 마음 놓고 드시라~~'라고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선 적이 있었는데 이번은 그 속편인 셈입니다.

추가협상단이 미국에 도착하자 휴스턴 한인회에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지 말아 달라'는 요지의 "탄원서"를 "성명서"라는 이름으로 텍사스 농축협회(Texas Cattle Feeders Association)을 비롯한 미국 축산업자들에게 보내 협상단에게 무게를 실어 주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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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한인회가 텍사스 농축협회에 보낸 탄원서


한글번역

미국에는 현재 250만명의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들이 살고 있습니다.텍사스에도 13만명의 한국계 미국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250만 한국계 미국인들은 한미 양국의 군사,경제적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지난 4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동의한 이후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있습니다.
특히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는 광우병 전염의 위험이 크다는 믿음은 시민들이 정부를 향해 반대 시위를 벌이게 하고 있습니다. 시위는 벌써 한달동안이나 계속되고 시위대는 자신들의 분노를 반정부,반미정서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0일, 미국내 주요도시의 한국계 미국인 단체들은 언론을 초청하여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의 시민들에게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한국 국민들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주 부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30분에 걸친 전화 통화에서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힌 한국 정부는 30개월 이상된 미국 쇠고기가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계 미국인들은 두 나라간의 오랜 동맹관계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하고 쇠고기 수입문제로 깨져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귀 협회에 제안하는 것은 (협회에 소속된) 농장주들이 30개월 이상된 쇠고기는 한국에 수출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시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동포들이 질좋은 미국 쇠고기를 싼 가격에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250만 한국계-미국인들의 희망이며 바램입니다.

2008-6-19
휴스턴 한인회장 김수명
 

우선 이 글은 "미 축산업계에 보내는 성명서"라는 이름으로 공개 되었지만 성명서라기 보다는 탄원서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원래 성명서는 "정치적·사회적 단체나 그 책임자가 일정한 사항에 대한 방침이나 견해를 공표하는 글이나 문서"이므로 텍사스 축산협회에 한국 사연을 하소연하고 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 글은 성명서라기 보다는 탄원서(사정을 하소연하여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글이나 문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 인식에 있어서도 어떻게 한국 국민들의 쇠고기 수입 반대,반정부 시위를 반미시위로까지 확대해석하고 한미 동맹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연관고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휴스턴 한인회가 "반정부=반미"라고 생각해서 이런 글을 쓴 것이라면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미국"라는 황당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한국 시민들이 길거리로 촛불을 들고 쏟아져 나오는 것을 단지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출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잠재울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국민의 소리에 귀를 닫아 버린 대통령,정부와 별 다를바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휴스턴 한인 회장은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자신들의 주장을 들으라고만 강요하는 대통령과 정부가 이번 사태를 키웠고 분노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광화문 네거리까지 몰려온 시민들을 청와대 뒷산에 올라 자기 눈으로 보고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태평양 건너 불구경 하는 사람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그래도 한가지 긍정적으로 보고 싶은 것은 처음에는 괴담이다, 좌익세력의 준동이다, 수십년 먹어도 괜찮더라 등등...라고 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던 한인회가 나름대로는 한국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다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랑 한통 써 들고 나선 편지의 효과나 진정성은 차지하고라도, 한국의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반미시위"라 칭하고 한미 동맹에 위협이 된다며 허무맹랑한 "괴담"을 사실인양 버젓이 유포하고 있으니 차라리 안 보내니만 못한 "탄원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250만 재미 동포들의 전체 의견인양 말입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잘 모르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걸 공연히 나서 한국의 촛불시위를 반미시위로 만들어 버린 휴스턴 한인회는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기나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사 촛불집회를 반미 시위로 연결해 나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촛불을 들고 시위에 나선 국민들은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시위의 취지를 훼손시키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노력하는 세력이 보수 언론들이고 정부라는 것을 휴스턴 한인회는 알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