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간으로 6월 5일, 코네티컷의 주도 하트포드(HARTFORD, Connecticut )에서 경찰이 공개한 짧은 비디오가 많은 미국 사람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교통 CCTV에 찍힌 비디오에는 지난 토요일(5월 30일) 오후 길을 건너던 한 노인이 뺑소니 차에 치어 길바닥에 쓰러져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코네티컷의 하트포드 경찰이 공개한 사고 비디오
식료품점에서 우유를 사서 길을 건너다 중앙선을 넘어 달리던 차량에 정면으로 받힌 78세의 노인이 길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본 주변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 들긴 했지만 아무도 이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오는 차를 막아서거나, 직접 도움을 주기 위해 피해자에게 다가서지 않은 걸 볼 수 있습니다.
비디오를 보면 다행히 사고가 나서 2분도 안 돼 경찰차가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이것은 다른 사건으로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현장을 지나가던 경찰차였지 이 사고로 출동한 경찰차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거나 도움을 주지 않고 수수방관한 사람들을 "지구상에서 가장 저열한 인간들"이라며 이 사건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또한 뺑소니 범인에 대한 신고를 받기 위해 사건 당시의 비디오를 공개한 경찰도 노인을 중태에 빠뜨린 사고를 일으키고 도주해 버린 범인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도 수수방관한 행인들의 비정한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이 소식을 보고 있으니 예전 중국 베이징의 출근 버스안에게 어린 소녀가 목졸려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승객들이 말리지 않고 방관했다는 뉴스를 전한 신문기사가 생각 납니다. 그때 신문에서는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전통이 표출된 사건이라며 중국인들이 정의감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었습니다. 한마디로 후진국 사람들이라 사회의식이 없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합리화 하기라도 하려는듯 인터넷에서 저렴(?)한 중국인의 국민성을 보여주는 예라며 남의 불행에 무관심한 중국인들을 보여주는 사진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 부상자에 무관심한 중국인들
어쩌면 이번 미국 코네티컷의 사건도 중국의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쉽게 비난하듯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면 나서려 하지 않는, 정의감 없는 저열한 이기심때문에 생긴 사건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낮은 사회의식과 각박한 이기심만으로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이런 사건들을 설명하는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국민성,민족성에 따라 발생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과 중국은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나라인데도 비슷한 현상이 생기는 것은, 단순히 각박한 인심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 특성때문이라고 설명 하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의 현장에 있었지만 도움을 주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사고 직후 피해노인은 의식이 있었다거나 자신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줄 몰랐고 만약 알았더라면 도왔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의롭지 못한 행동에 대한 변명일지는 몰라도 결국은 나서서 도와야 할 상황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자신도 돕고 싶었지만 누군가 그런 응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줄 아는 사람이 나서서 대신 돕길 바랬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인터뷰를 듣고 생각나는 것이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때 자기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심리학 용어로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따라 행동하기보단 자기 주변의 군중의 반응에 편승하려는 인간 심리가 원인이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방관자 효과가 나타나는 요인을 1) 군중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대신 나설 것이라는 생각으로 꼭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책임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2) 도우려고 나서도 자신의 능력밖의 일이어서 자신은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의사나 경찰과 같은 적당한 사람이 나서길 기다리거나, 실제 알고보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어서 소위 '쪽팔림'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평가우려(Fear of blunders)',
3)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속한 군중중에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을 보며 자신의 그런 생각들이 옳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는 "다수의 무지(pluralistic ignorance)'가 원인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방관자 효과에 대한 요인들에 사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대입시켜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방관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은 자기 옆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고 누군가 전문가가 나서서 도움을 주길 바라며, 아무도 나서지 않는 그런 상황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자기 합리화를 거쳤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개미떼의 공격을 받아 미친듯이 괴로와하는 것을 바라보던 방관자들은 나중에 그것을 끔찍한 일이었다고는 말하지만 거기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From: The Bystander Effect (Gilovich, Keltner & Nisbett, 2006, pp. 536)
이렇게 사람들의 비정한 행동을 심리학적으로는 설명할 수는 있지만 막상 나 자신이 그런 방관하는 군중들 앞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당사자라고 했을때는 여유롭게 이런 심리학 용어나 읇조리고 있을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고상한 학자들의 심오한 이론이 아니라 강도를 당했을때 "강도야~"라고 외치지 말고 "불이야~"라고 외쳐야 사람들이 나선다는 노인의 지혜(?)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이 말은 팔짱끼고 서서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 아니라 그 중 한 사람을 콕 찍어 "당신이 경찰에 신고해 달라"는 식의 책임을 지워 그 사람을 더 이상 그 상황의 방관자가 아니라 관련있는 당사자로 끌어들이고, 그것으로 주변 군중의 망설임을 허물어뜨려 도움에 참여하도록 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 방관하는 것이 단순히 각박한 인심이나 낮은 사회의식때문만이 아니라 군중속에 숨기 쉬운 익명성에서도 비롯되는 것이라면, 세계 다른 나라 못지 않게 도시화 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위기 상황을 만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혹시라도 발생할 지 모를, 그럴때를 대비해 이런 대처 방법쯤은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관련 뉴스
http://www.cnn.com/2008/CRIME/06/05/ignored.hitrun.ap/index.html?iref=mpstoryview
http://www.courant.com/news/custom/topnews/hc-daryl0605.artjun05,0,405039.story
http://youtube.com/comment_servlet?all_comments&v=9ICQ15Es_Ng&fromurl=/watch%3Fv%3D9ICQ15Es_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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