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글 Lv. 1

텍사스에 오시면 발밑을 조심하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From: http://hortipm.tamu.edu/pestprofiles/chewing/fantsdawn/fantsdawn.html


사진은 남부 텍사스에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목장 풍경입니다. 드넓은 대지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나 말을 바라보다 보면 그 태평한 신세가 부러워 질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풀밭 군데 군데에 불룩히 솓아 오른 예사롭지 않은 흙더미들이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집앞 잔디밭에도 같은 모양으로 솓아 오른 흙더미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만약 이 정체 모를 흙더미를 그냥 발로 툭툭 밟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From: http://hortipm.tamu.edu/pestprofiles/chewing/fantsdawn/fantsdawn.html




바로 이렇게 선전포고도 없이 즉각적인 개미들의 격렬한 기습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 개미들은 예전 초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던,사냥꾼의 발을 물어 자신을 구해 주었던 비둘기를 구하는, 은혜를 아는 선량한 개미들이 아닙니다.

0123

이것들은 얼굴 생긴 모습에서도 포악함이 물씬 풍기는 수입산 불개미(Red imported fire ant)들입니다.  5mm를 넘지 않는 이 조그만 개미 한 두마리가 물었다고 설마 별일이야 있을까 싶겠지만 결코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되는 무서운 놈들입니다.

처음 물릴땐 불에 덴듯이 '따끔'하고 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가 몹시 가렵기 시작합니다. 물고 나서 알카로이드성 독액을 주입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정도가 지나고 나면 물린 자리를 중심으로 감각이 둔해지면서 벌겋게 퉁퉁 부어 오릅니다. 그러다 하루 정도가 더 지나면 물린 자리에 노랗게 농포가 잡히면서 견딜 수 없는 간지러움으로 혀를 깨물고도 참기 힘든, 긁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고생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주일 정도가 지나고 나면 가려움증이 덜해 지면서 농포도 사라지는데 만약 이전에 농포가 터지면서 감염이라도 된다면 나은 후에도 영구적인 흉터가 남게 됩니다. 사실 이 정도로 증상이 가라 앉으면 운이 좋은 경우지만 16% 정도의 사람들은 불개미의 독에 알르레기를 일으켜 경우에 따라서는 혈압이 떨어지면서 호흡곤란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통계적으로 한 해에 불개미가 분포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40%정도(약 2천만명)가 한번은 불개미에 물린다니 알르레기 반응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3백2십만명에 달합니다. (2천만*16%=3백2십만명)

제 주변에도 몇분이 골프장이나 공원에서 불개미 집을 밟았다가 호흡곤란을 일으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체질의 사람들은 불개미에 물리지 않도록 바깥 활동을 할때 조심해야 하고 에피네프린(Epinephrine kits) 주사 키트를 가지고 다닐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개미에 물려 알러지 반응이 나타날때 즉시 응급처치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물린 자리가 부어 오르기도 전에 심각한 쇼크에 빠지기도 하기 때문에 신속한 처치가 중요합니다.

마치 이건 영화 더록(The Rock)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독가스에 중독되서 입에 거품을 물고 벌벌 떨며 자신의 몸에 응급약물을 주사하듯 자신의 허벅지에 스스로 주사 바늘을 찔러 넣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응급처치인 것입니다. (영화 '더록'(The Rock)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독가스에 노출된 후 숨을 헐떡이며 거품을 물고 자신의 심장에 허벅지에 찔러 넣던 것은 아트로핀이라고 알려 주셔서 정정합니다. 바로 그 에피네피린(아드레날린) 주사입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원래 이 녀석들은 미국내에 자생하던 불개미와는 다른 종으로, 남미 열대 우림에 살던 녀석들인데 어찌된 일인지 1920-30년대에 미국 남부 알라바마에 처음 상륙한 후 1년에 약 120 마일(190km)의 속도로 북서쪽으로 번져 나가서 지금은 미국 남서부 12개 주에 퍼져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fter: http://johnhawks.net/weblog/reviews/evolution/speciation/invasive_fire_ants_2007.w



식물의 씨앗을 먹어 치우고 위의 사진과 같이 농작물의 뿌리 근처를 파헤쳐 둥지를 만들어서 농사를 망쳐 한 해에 미국 전역에서 약 60억 달러(약 6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일으키고 텍사스에서만도 연간 12억 달러(약 1.2조)에 달하는 피해를 일으킨다고 추산 되고 있습니다.

이 개미들은 농작물뿐만이 아니라 에어컨이나 신호등의 전선들을 갉아 먹어 사람을 무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방법으로 인간 생활에 직접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불개미는 거의 모든 식물과 파충류, 지상에 둥지를 틀고 부화하는 조류의 알까지도 먹이로 삼기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한 조류나 파충류에도 위협적인 존재이 되고 있어서 뱀과 함께 조류의 알 포식자로 분류될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외래에서 들어온 종이다보니 미국의 생태계에는 천적이 없어 개체수가 자연 조절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합니다.
한국에 들어온 외래종 동식물들이 생태계를 교란시켜 문제가 되듯 미국 역시 남미에서 들어온 이 불개미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국제화의 결과로 물류 교류가 전에 없이 활발해 지면서 서로자국에 없던 이런 외래종을 주고 받는 일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6년 7월 현재 분포도(http://www.aphis.usda.gov/plant_health/plant_pest_info/fireants/index.shtml)


자신이 혹은 자신들의 둥지가 공격 당한다고 느끼면 한꺼번에 달려 들어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물어뜯는 매우 공격적인 습성을 가진 이 위험한 불개미들은 다행이 추위에 약해 그동안 북쪽으로는 많이 올라가지 못하고 텍사스,루이지애나,미시시피,플로리다 등의 미국 남부의 동서쪽으로 주로 세력을 확장했는데 요즘은 이 녀석들이 추위에 적응하는 특수 극기 훈련이라도 받았는지 추위를 이기고 차츰 차츰 북상하고 있어서 벌써 텍사스에선 달라스 근처까지 진출 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있던 달라스 알링턴에는 텍사스인데도 겨울엔 가끔 눈이 오기도 합니다.)

어느날 한 겨울의 추위에도 끄떡없는 돌연변이가 나와서 이 개미들이 한국까지 전파된다면, 수십년동안 어린 동심의 세계에 쌓아온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던 근면 성실한 개미의 이미지는, 아무것이나 마구 물어뜯는 포악한 불개미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이미 중국 광둥(廣東)성 일대에서는 대만에서 인위적으로 보냈다고 의심되는 불개미들이 사람을 공격해서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웃한 한국도 안전하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불개미에 물렸을때 응급조치로는 물과 비누로 물린 부위를 깨끗이 씻고 얼음등으로 냉찜질을 하고 항히스타민 계열의 베나드릴(Benadryl -Diphenhydramine) 과 같은 알러지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완화 됩니다. 하지만 만약 불개미 독에 알러지 반응을 있는 사람이라면 지체말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야 합니다. 위에 예로 들었던 분은 베나드릴을 먹고도 상태가 나빠져서,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져 응급실에 갔더니 의사가 베나드릴을 먹고 오지 않았으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rom: http://fireant.tamu.edu/antfacts


이 끔찍한 불개미들을 근본적으로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날개 달린 여왕개미가 16km정도까지 날아가서 새로 군집을 만들고 습도가 낮아지고 땅이 단단해 져서 생존 환경이 안 좋아지면 땅속 깊이 파고 드는 이 불개미의 특성상 현재로서는 불개미 전용 살충제로 발견한 둥지를 그때그때 처리한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유충이 불개미를 공격하는 기생파리나 불개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등이 연구되고는 있지만 또 다른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고 원래 그것들이 있었던 환경과 다른 환경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쓸 수 있는 간단한 불개미 퇴치 방법은 커다란 남비에 물을 펄펄 끓여 개미집에 살포시 부어 버리는 방법입니다. 살아있는 개미들을 뜨거운 물을 부어 죽인다는 것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뜨거운 물에 알까지 모두 익어버려 효과는 아주 좋습니다. 다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개미 잡으려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은 해야 합니다.

텍사스에 오시면 발 밑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조그맣다고 얕보았다가는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조그만 불개미가 작은 눈을 반짝이며 발밑을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P.S: 비루쑤님이 댓글로 더록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허벅지가 아닌 심장에 약물을 주사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원래 응급주사 투여방법과 더록의 영화 장면을 혼동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상에서 심장에 주사하는 것은 극적효과를 높이기 위한 영화적 방법이고 일상적인 경우에는 투여량이 많을 경우 정맥주사를 실시합니다. 원래 에피네피린은 주사 용량에 따라 피하주사나 근육주사 또는 정맥주사로 투여하지만 응급주사 키트는 위급한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벅지에 자가주사 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습니다.

P.S 2: 영화 더록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심장에 찔러 넣는 약물은 아트로핀으로 쇼크 방지제로 쓰이는 아드레날린이 아니라고 "길우진", "니콜라스 케이지","화학도"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P.S 3: 다음 그림은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에피네피린 응급키트입니다.
(From: http://www.twinject.com/index.html)

사용자 삽입 이미지

From: http://www.twinject.com/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