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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문화

영화 불법다운로드에 대한 변명

미디어몹에 버스정류장 님이 쓰신 "DVD 수집에 대한 단상"을 읽다가 한국 DVD 시장의 위축이 불법복제에만 원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 지금까지 사모은 DVD가 200장을 훨씬 넘어가면서 "이제 그만! 이제는 그만"하며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구매욕을 다스려보다가 그것도 안되면 지금까지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지 계산도 해보고 새로 산 DVD를 손에 들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힐 마눌님의 차디찬 살상 레이저급 질시를 떠올리며 구매를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나또한 실제로 많은 수의 영화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Divx를 통해 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아예 Divx가 플레이되는 DVD player를 하나 더 샀다. 그런 영화를 구워 놓은 CD가 꽤 된다. 물론 divx 다운로드가 정당하지 못한, 저작권을 훼손하는 행위임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얻은 영화를 볼 때면 머릿속에 "난 지금 저작권을 위반하고 있다."라는 죄의식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어쩔때 영화를 보느라 투자한 두 시간이 아까운 영화들을 보고 나면 정말이지 기꺼이 저작권을 위반해 주고 싶어지기도 하다. (농담반 진담반)
어찌 되었건 Divx 다운로드는 저작권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임이 분명하지만 그 책임이 버스정류장 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다운로드족에게만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불법을 했으면 범죄지 그 책임이 어디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으로만 판단해 버리고 비난만 해서는 현재의 실상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내가 DVD를 사는 이유는 불법 복제는 범죄라는 평범한 도덕적 명분을 의식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를 Divx로 보고 난 다음 괜찮은 영화다 싶어 DVD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해서 사 모은 것이 지금의 숫자가 되어 버렸으니 dixv가 갖는 순기능도 있는가 보다. 하지만, Divx가 아무리 화질이 좋고 5.1채널의 사운드로 음질이 좋다고 하더라도 태생이 DVD의 서자쯤 이다보니 청출어람 하기는 불가능하고 버스정류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서플과 기타 부록을 기대할 수 없어서 DVD에 대해서는 아주 저렴한 입수비용 이외에는 비교우위가 될 것이 없다고 본다.
가끔 한국에 갈 때마다 갖고 싶었던('보고 싶었던'이 아니라) 한국 영화를 사려고 기웃거려 보면 도대체가 너무 비싸다. 좀 번듯하게 나왔나 보다 하면 무조건 2만원은 넘으니 집었던 손을 멈짓하게 된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구입했다는 아이러니한 나름의 사연이 있다.

한국의 DVD 시장이 위축된 가장 큰 원인은 엄청나게 빠른(?)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불법다운로드에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DVD를 살 의사가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가치대비 가격이상의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면 제대로 판매가 이루어 질 리 없다고 본다. 어느 정도의 가격이 적정 가격이냐는 반격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할 수 없지만 시장성이 나쁘므로 악화된 수익성을 보존하고자 고가정책을 펴는 발매회사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금에 와서 DVD 시장에서 박리다매로 시장을 살리는 것이 가능할는지는 모르지만 DVD 플레이어가 있는 집에 한두 개씩의 정품 타이틀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초기시장에서 이런 정책을 썼다면 지금과는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가능한 적정 DVD 타이틀 가격은 시장 자체를 건실하게 키울 수 있는 수준으로 하고 차세대 주자인 블루레이와 HD DVD 또한 시장 초기부터 이런 가격 정책을 써서 타이틀의 판매 갯수를 늘리는데 촛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키우는데 주력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된다.

사 모으는 DVD의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 머리의 기억능력을 초과해 버리는 상황이 발생해 관리하기가 여의치 않아 DVD 관리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얼마 전 내가 가진 영화들을 제작 연도 순으로 나열하고 보니까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8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 제작된 영화가 연도당 구매 타이틀 수가 가장 많았고 2003년 이후가 가장 적은 결과를 보여 주었다.

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나오는 많은 영화가 만화를 원작으로 하거나 리메이크(각색이나 리메이크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의 부재, 소재의 궁색함이 나쁘다는 것이다.) 또는 영화 플롯의 전개가 너무나도 뻔히 보이고 항상 보던 그렇고 그런 상투적 결말로 끝나다 보니 다시 DVD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DVD시장이 위축되는 또 다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없는(감동 없는, 영상미 없는 등등...취향에 따라 달라길 수 있는 영화의 덕목) 영화의 양산은 DVD 구매욕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고 영화시장 자체를 위축되게 만든다.
 
단순히 사람들이 영화를 Divx로 보기 때문에 DVD를 사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사람들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때문에 DVD를 사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논리라고 본다. (물론 Divx와 극장 사이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했느냐 하는 태평양만큼 넓은 간극이 존재하겠지만 DVD판매만 한정해서 본다면) 무조건 Divx가 횡행하기 때문에 DVD가 안 팔린다는 것은 공급자의 논리다. 적당한 가격과 좋은 영화라면 분명히 DVD 시장도 지금보다는 생기를 얻을 것이다.

"다운로드는 불법이다! 범죄다!! 지금 영화가 보고 싶으면 다운로드를 중지하고 나가서 정품 DVD를 사라",   이것만으로는 안 통한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