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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Lv. 1

미국에서 외면 받는 한국 명품 쌀


언어만큼이나 입맛도, 어려서부터 몸으로 길들여지면 바꾸기 힘든지,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살았어도 먹는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를 먹어도 꼭 김치를 곁들여 먹어야 개운하고, 며칠 출장을 떠나 미국식으로 내리 몇끼를 먹고 나면 눈 앞에 된장 찌게가 아른거리는, 현지화에 실패한 입맛(?)때문에 한국슈퍼는 제게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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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국슈퍼


물론 일반 채소나 과일, 육류같은 일반적인 식료품은 미국 식료품점을 이용하지만 라면,고추장,간장,된장,삼겹살 이런 한국 음식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한국 식품점을 가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끼 식사의 기본이 되는 쌀은 한국 슈퍼에 들렀을때 꼭 챙겨야 하는 필수 항목임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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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국슈퍼에서 파는 쌀


처음 미국와서 놀란 것은 조그마한 동네 한국 식료품 가게인데도 1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상표의 쌀을 팔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더 놀라왔던 것은 위의 사진에도 볼 수 있듯이 미국 한가운데에서 한글로 포장된 쌀을 살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는 미국 온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때라 미국쌀이 한국으로 수입된다더니 한국쌀도 미국으로 수출되서 이렇게 팔리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이 쌀들은 포장만 한글로 되어 있을뿐 거의 대부분이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쌀을, 교포들을 겨냥해 한글 상표로 포장만해서 파는 엄연한 미국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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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슈퍼에서 파는 각종 쌀들


사실 쌀은 미국 슈퍼에 가도 얼마든지 살 수는 있습니다. 비록 포장 단위가 작기는 해도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미국 식료품점 어디에서나 쉽게 쌀을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민들은 이 쌀로 밥을 해 먹지 않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한국 슈퍼에 갈때마다 쌀을 사오는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사진을 유심히 보면 동네 미국 식료품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이 쌀들을 마다하고 교포들이 먼 한국 슈퍼까지 가서 쌀을 가야하는가 하는 의문의 답이 있습니다.

위 사진을 클릭해서 확대시켜 자세히 보면 한 종류를 빼고는 모두 "Long Grain" 또는 "Extra Long Grain"이라고 표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쌀들은 한국에서 흔히 '안남미' 또는 '베트남쌀'이라고 부르는 종류로 쌀알이 길고 밥을 했을때 찰기가 없는 푸슬푸슬한 인디카(Indica,장립종)종의 쌀(긴쌀)들입니다.
대부분 아칸소(Arkansas), 루이지애나(Louisiana), 텍사스(Texas), 미시시피(Mississippi),미주리(Missouri)등에서 생산되는 이 쌀들은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 교민들은 이 쌀들 대신 스시라이스(초밥용 쌀)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나 아칸소에서 생산된, 한국 쌀과 비슷한, 자포니카(Japonica,중단립종)종의 쌀알이 짧고 밥을 했을때 찰지고 윤기가 도는 쌀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한국 슈퍼에서 파는 쌀들은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비록 포장은 한글로 되어 있지만 "California Medium Grain Rice, Product of USA"라고 명기돼 있듯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중단립종 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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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슈퍼에서 팔리는 캘리포니아산 중단립종 쌀


우리 입맛에는 중국식당이나 멕시코 식당에서 나오는 푸석푸석하고 날아갈 듯한 긴쌀로 지은 밥보다는 쫀득쫀득하고 찰진 짧은 쌀로 지은 밥이 맛있지만 미국 사람들은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적합하고 성인병 예방에 좋다며 긴쌀로 지은 맛없는 밥을 건강식품이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미국내에서 생산되는 쌀들도 긴쌀(장립종)이 전체 생산량의 75%를 차지하고 짧은쌀(중단립종)은 25%에 불과해서, 주로 긴쌀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아마 미국 내에서 찰진 짧은 쌀을 소비하는 주된 대상은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소수의 중국사람들로 국한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미국내 한국슈퍼에서 한국에서 수입된 진짜 한국산 쌀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작년 6월 전북 군산의 철새도래지쌀이 처음 수출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군산 철새도래지쌀, 신안 섬드리쌀, 평택 슈퍼오닝쌀, 여주 대왕님표쌀, 철원 오대쌀, 서천 미감쾌청쌀, 당진 해나루쌀, 서산 뜸부기쌀, 의성 황토쌀, 하동 포구쌀, 함양 지리산황토쌀 등 11가지가 넘는 한국 명품쌀들이 수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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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미국에 수출한 군산 철새 도래지 쌀


매일 쌀 시장 개방이다 뭐다해서, 미국쌀이 수입되면 한국 쌀 농사가 망한다는 비관적인 이야기만 듣다가 도리어 우리나라의 쌀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인 미국에 수출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몇 개월 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그 뿌듯함과는 달리 6개월 가량의 기간동안 지켜본 바로는 광복 이후 처음 수출했다는 한국 쌀이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실망스러운 사실입니다. 그것도 긴쌀을 주로 취급하는 미국 식료품점에서가 아니라 한국 교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국 슈퍼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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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팔리고 있는 전남 신안의 섬두리쌀


전북 군산의 철새 도래지 쌀은 작년 10월경 처음 보았을때 100여 포대가 쌓여 있었는데 4개월이 지난 지금은 11포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2주전부터 첫선을 보인 전남 신안의 섬드리쌀은 아예 판매 개시때부터 $39.99로 책정된 가격을 $29.99로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슈퍼에서 일하고 계신 분께 여쭤 본 바로는 한국에서 수입된 명품쌀들은 하루에 한 포대 나갈까 말까할 정도로 인기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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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출 초기부터 한국 명품쌀들이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수출 초기 여러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면 경기도 평택 오닝쌀의 경우 초기 수입물량(10t)이 조기에 팔려나가 추가 물량(20t)을 수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보도도 자세히 뜯어 보면 초기에 날개 돋힌듯이 팔렸다는 10t은 10kg짜리 포장으로 환산하면 겨우 1000포대 밖에 안 되는 적은 물량인데, 이것이 12개 슈퍼에서 판매해서 20일만에 동이 났다면 한 슈퍼에서 하루에 5개도 못 팔았다는 말이 됩니다.

이나마도 더 많은 물량이 추가로 수입되면서 인기가 떨어져, 경기 여주 대왕님표쌀의 경우에는 1㎏당 2,500원에 수출하던 것을 미국 바이어가 1㎏당 2,000원 선으로 수출가격을 낮출 것을 요구해서 추가 수출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있을 정도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언론 보도에 6월 최초 미국 쌀 수출 이후 미국은 1290t, 러시아는 500t의 쌀 수출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나왔지만 정작 수출된 물량은 미국은 326t,러시아는 100t에 불과한 물량만이 실제 수출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경우 교포들이 사상 최초로, 고국의 명품쌀이 수입되었다는 반가움과 향수에 처음에는 구입했지만 밥맛이 그동안 먹어오던 캘리포니아산 미국쌀에 비해 월등한 차이를 보이지 않자 관심이 시들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캘리포니아산 짧은 쌀은 그냥 솥에 밥을 하면 한국 쌀로 지은 밥에 비해 찰기도 많이 부족하고 윤기도 덜 나지만 압력 밥솥에 밥을 하면 거의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비슷하기 때문에 처음 호기심에 구입했던 교민들이 높은 가격을 주고 다시 한국 명품쌀을 구입할 만큼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래 그림은 휴스턴에서 제일 큰 한국 슈퍼에서 판매하는 각종 쌀들의 가격을 정리한 것이입니다. (각 품목을 클릭하면 큰 이미지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각 이미지를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한성싱싱미$9.99CJ천하일미$9.99해태그린쌀$9.99시라기쿠$9.99한국미$12.99한미쌀$12.99CJ햇쌀$14.99고다$17.99철새도래지쌀$39.99
(각 품목들을 클릭하면 큰 이미지로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 미국의 한국 식료품점에서 팔리고 있는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쌀들의 가격은 9kg(20파운드) 한 포대에 $9.99-$12.99였고 특등품이라는 CJ햇쌀이나 일본 코다쌀(역시 캘리포니아쌀,단지 일본 자본의 회사가 생산)도 $14.99나 $17.99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수입쌀들은 철새도래지쌀은 10kg(22파운드)에 $39.99, 신안 섬드리쌀은 $29.99로 같은 무게로 환산하면 최소 2배에서 최대 3.6배이상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해방이후 처음 수출되었다는 한국산 명품쌀들이 한국 슈퍼에서 외면받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3.6배까지 비싼 가격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약을 덜 쓰고 유기농 농법으로 농사지은 최고 등급의 우수한 쌀이라고는 하지만 밥 맛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도 가격은 3배이상 비싸기 때문에 교민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39.99로 책정된 한국산 명품쌀들의 가격은 미국에 시판되고 있는 쌀들과 비교해 보면 비싸지만 물류비나 유통 마진을 고려하면 미국에 수출 한다고해서 한국내 판매가 보다 특별히 훨씬 더 비싸게 가격을 책정한 것은 아닙니다.
휴스턴 슈퍼에서 $39.99(10kg)에 판매되는 철새도래지 쌀은 한국에서 10kg에 28,000원으로 달러로는 약 $30(환률 950원)에 판매되고 있고, 재고 정리를 위해 $29.98(10kg)에 할인 판매되고 있는 섬드리쌀의 한국내 판매가 30,000원으로 달러로는 약 $32입니다.

한국 미국 휴스턴 차이
철새도래지쌀 $30(28,000 원) $39.99(37,990 원) $9.99(9,490원)
섬드리쌀 $32(30,000 원) $29.98(28,480 원) -$2.02(1,920원)

그러니까 같은 양의 포장이면서 철새도래지 쌀의 경우는 한국내 판매 가격($30)보다 미국내 판매 가격($39.99)이 $10불 정도 비싸고 섬드리쌀의 경우에는 재고를 정리하기 위해 할인 판매를 하고 있어서 도리어 한국내 판매가격($32)보다 약 $2 정도 싸게 ($29.98) 팔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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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첫 수출이라며 야심차게 시작한 한국산 명품쌀이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밥 맛이 월등하게 더 좋지 못하면서도 미국 쌀에 비해 2-4배까지 높은 가격이 첫번째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두번째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11개 브랜드의 한국쌀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수출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처음 수출된 한국산 명품쌀에 대한 호기심과 고국에서 맛보던 한국쌀이란 향수어린 마음이 구매의 동기가 되었다면, 이런 감정이 사라지고 난 후 쏟아져 들어온,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려울만큼 많은 11가지의 한국 명품쌀들은 결국 그 자리에 줄지 않고 쌓여있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호기심과 향수만으로는 지속적인 판매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부진의 이유는 미국에 한국 쌀을 수입하는 업체들이 기존에 미국내 한인을 대상으로 쌀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라는 점입니다. 한국 교민들에게  한국 쌀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일지 몰라도, 그러다 보니 그 쌀 소비의 대상이 한국 교민에게만 한정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과 일부 중국 사람들도 찰진 짧은 쌀을 소비하지만 한국 슈퍼에서만 판매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랑하는 높은 품질도 우리들끼리만의 자화자찬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 가장 먼저 철새도래지쌀을 수입한 해태글로벌의 경우만 봐도 이미 그동안 자신들의 브랜드로(大豊) 캘리포니아 쌀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가지 브랜드만 더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보니 팔리지 않으면 더 이상 수입하지 않으면 그 뿐, 장기적인 판매 촉진을 위한 비전이나 노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미 FTA협상 등으로 쌀 시장이 개방될 것을 우려하는 한국 농가들에게 쌀 수출은 분명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해외에 살고 있는 교민들만을 바라보고 수출을 하는 것은 그 한계가 뻔히 보이는 일입니다. 더구나 미국쌀에 비해 판매 가격이 몇배나 높은 명품쌀에 국한된 수출은 한국 농가의 걱정을 해소하는 방법이 되기에는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그리고 단기간의 이윤을 목표로 하는 유통업체를 통해 수출하는 것은 수출 초기 단계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판매를 위해서는 한국쌀의 위상을 높이고 그 판매처를 개척하는 별도의 책임있는 마케팅 기구를 통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미국은 한국에 미국산 쌀을 홍보하기 위해 미국 쌀협회 한국 지부를 설립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 및 판촉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그런 구심점이 될만한 상설 단체없이 각기 다른 미국내 유통업체에 의존해 미국내 쌀 판매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미국내 쌀 농사를 짓는 8000여 농가 중 우리나라와 비슷한 품종의 카포니카(짧은 쌀)종을 재배하는 1500 가구 미만의 농가는 우리나라의 98만여 농가에 비하면 0.15%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숫자(전체 쌀 재배 농가는 우리나라의 0.8%)인데도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냥 남의 나라 일로 보아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미국 쌀 수출 초기에 "해방 이후 최초"라며 관심을 보여준 한국 언론들이 정작 쌀 수출, 그 이후의 현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농업에 관련된 일이라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 쌀 수출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나타난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으면 결코 어려움에 처한 한국 농가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없는데도 초기 이벤트성으로 반짝 관심을 보이고는 나 몰라라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 미국에 쌀을 수출하고
어찌나 기쁘던지 잠까지 설쳤습니다. 몇년전만 해도 쌀 수출은 꿈도 못 꾸었지요.
라고 인터뷰하던 농민의 부푼 꿈을 이루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얼마전 라면 파동에서도 보았듯이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라도, 위기에 봉착한 쌀 농가의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쌀 수출에 관심을 갖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미국과 한국 쌀 농업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농혐조사연구소의 자료를 참고하세요.
자포니카 쌀(중단립미)의 국제 교역동향 : http://aglook.krei.re.kr/down/oy2008/hwp/2008oy19_hwp.pdf
미국 쌀 농업 경쟁력의 진실 :농민 신문 기사 참고
쌀 수출 계약 그래프: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278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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