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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Lv. 1

미국에선 자신도 모르게 '나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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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ttp://www.jupiterimages.com

예전 흔히 쓰이던 '이웃사촌'이란 말은 이제 잊혀진 고사성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문제로 이웃끼리 다툼을 벌이다 결국 법정까지 갔다거나, 주차문제로 이웃끼리 폭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 소재가 되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도 세계화의 영향인지 이제 이웃 간의 분쟁은 우리나라뿐만이 세계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경우는 "이웃공동체 파괴가 우려될 만큼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1500여 곳 가정을 선정해 정부가 강력한 가정 개입’(Family intervention) 정책" 실시해서 ‘나쁜 이웃’을 심각성에 따라 상·중·하 세 그룹으로 분류해서 관리하고, 그중 가장 심각한 상위 그룹은 별도의 집중관리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극단적 조치까지 취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만약 집중관리지역 이주를 거부할 경우 살던 곳에서 ‘퇴출’되거나 사법 조치되는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하니 '이웃사촌'간의 다툼에도 정부차원의 공권력이 동원되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만약 새로 이사간 집의 이웃이 '특이한 정신 세계'의 소유자라 주변사람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온갖 소음과 기행으로 이웃들에게 불편을 초래한다고 해도 이사를 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미국에는 이런 곤난한 상황을 이사 가기전에 미리 확인해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습니다. 미국 샌디애고(San Diego)에 사는 브랜트 워커(Brant Walker)라는 프로그래머는 이웃집에서 풍겨오던 고약한 음식 냄새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에 착안해서 RottenNeighbor.com이란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이트는 관심있는 지역의 ZIP 코드(우편번호)만 넣으면 그 지역 사람들이 신고한 "나쁜 이웃"의 위치와 그 '악행'을 보여줍니다. 사이트 이름이 '썩은 이웃'이라 좀 거북하긴 하지만 이사 갈 동네를 사전 조사(?) 해서 '나쁜 이웃'을 만날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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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ttp://rottenneighbor.com/

위의 그림은 미국 4대 도시란 위상에 걸맞게 당당히 신고 많은 도시 4위에 랭크된 휴스톤의 일부 지도입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집이 '나쁜 이웃'으로 신고된 집이고 이런 '나쁜 이웃'이 근처에 몰려 있으면 그림처럼 커다란 노란집이 됩니다. 그리고 녹색집은 이웃에게 칭찬받는 '좋은 이웃'입니다. 구글맵을 이용해서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지도를 확대해 보면 번지수만으로도 어떤 집이 '나쁜 이웃'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에도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성범죄 전과자들의 사진과 이름, 거주지,직장등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이사갈 지역 근처에 어떤 성범죄 전과자들이 살고 있는가 하는 정보(http://www.familywatchdog.us)는 아래 그림처럼 얻을 수 있었지만 실제 살고 있는 주변 이웃들이 평가하는 성범죄자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나쁜 이웃'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서비스는 획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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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ttp://www.familywatchdog.us

(처음 그림의 3명의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Rotten Neighbor의 제보 내용과 빨간 색 상자로 표시한 해당지역에 등록된 성범죄자 수가 일치합니다.)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앞으로 구글 스트리트뷰(Street View)와도 연동시켜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가보지 않고도 그 동네 겉모습은 물론 미래 이웃들에 대한 품성까지 자세히 살필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새로 이사 갈 동네의 분위기를 미리 알 수 있고 어떤 이웃이 주변에 살고 있는 지를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유용한 서비스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이 사이트는 원래 취지와 같은 이런 장점뿐만이 아니라, 매우 심각한 부정적인 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나쁜 이웃'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지만 지도상에 사는 집이 정확히 보여지기 때문에 '나쁜 이웃'으로 지목된 사람의 명예훼손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런 제보가 익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나쁜 감정으로 결코 나쁜 이웃이 아닌 이웃을 세계 만방에 모함하는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이 사이트에 대한 많은 불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콜로라도 스프링(Colorado Springs)의 Deanna Leyba는 자기집 잔디를 일년에 한번 밖에 깎지 않아 이웃에 잡초를 퍼트리는 온상이 되고 있다는 Ruttenneighbor.com에 실린 자신을 향한 비난을 발견하고 어이 없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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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ottenneighbor.com/submit.php?search=Yukon+Way+Springs+Colorado+&x=959&y=351

사실 그녀의 남편은 지속적으로 매주 잔디를 손질하고 있고 실제로 그 비난의 대상도 자신의 집이 아닌, 남편이 이라크에 파병가 있는 옆집으로, 이 집 역시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비난 받을만큼 잔디를 방치하지는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정하고 위의 그림처럼 "Flagt for Removal"이란 옵션을 둬서 당사자가 이의 제기를 할 경우 진상을 조사한 다음, 신고를 취소할 수 있게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그전에 사람들에게 '나쁜 이웃'으로 낙인 찍혀 버림으로 발생하는 정신적,금전적 손해는 어떤 식으로도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부작용을 "이웃간의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한탄하기도 합니다. 사실 몇 발짝 걸어가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의하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일도 이렇게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웹사이트에 신고해 버리는 행동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반목을 더욱 깊게 할 것 같습니다.

예전 미국 주택들의 형식상 경계를 표시하던 허리 높이의 낮은 담은 요즘 키보다 훨씬 높은 나무 담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새로 건설되는 커뮤니티 빌리지는 대부분 입주자들 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커다란 철제 출입구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담장은, 사실 이러한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단절'이라는 '정신적 담장'서 비롯되었는 지도 모릅니다. 이런 단절이 확대되어 연방 정부가 나서서 국경에 콘크리트 담장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설명 한다해도 지나친 논리의 비약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옆집 이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 인터넷 상에 비난의 글을 올려 버리고 마는 미국에서 어느날 맛있게 즐기는 김치,청국장,된장때문에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나쁜 이웃'으로 낙인 찍힐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옵니다. 이제 미국도 더 이상 예전의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 점점 각박해져 가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가: 댓글에서 알려 주신대로 한국에도 이미 등록된 곳이 두 곳 있습니다. 한곳은 서울 원효대교 북단 철도건설본부 근처쯤 되는 곳에 커피가 맛있다는 신고(?)가 달려 있고 경기도 판교 분기점 근처에 개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짖는다는 불평이 있습니다. 혹시 지도에 표시된 지역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나라가 표시돼 있으니 무척 궁금하네요.
비록 두군데가 표시돼 있기는 하지만 아직 우리 나라에는 이웃에 대한 악의에 찬 비방은 없는 듯 합니다. 이웃사촌을 사랑하는 품성때문이라기 보다는 아마 잘 알려지지 않은 서비스라 그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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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ten Neighbor에 올라온 한국의 나쁜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