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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Lv. 2

우리들의 일그러진 신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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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플리처상 수상작 By 캐빈카터(Kevin Carter)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위 사진을 한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1994년 남아공의 사진기자인 캐빈 카터(Kevin Carter)에게 사진 기자들의 최대 영예라는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안겨준 유명한 사진입니다.
1993년 당시 내전으로 국민들이 기아에 시달리던 수단에서 찍은 이 사진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 어린 소녀와 이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를 한장의 사진에 담아 아프리카 수단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정말 백마디 말보다 강한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유명해졌지만 죽어가는 소녀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좋은 순간을 기다렸다는 이유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캐빈 카터는 사람들의 거센 비난을 받게 됩니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수단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려 더 많은 생명을 구한 것일지도 모르는 그의 행동도, 자신의 눈 앞에서 기력이 다해가는 사그라져가는 소녀를 구하지 않은 비인도적인 태도로 인해 비난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캐빈 카터가 소녀를 안고 구호 센터로 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은 소녀 스스로 일어나 구호 센터로 가던 길을 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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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캐빈 카터(From: http://www.hbo.com/docs/programs/kevincarter/interview.html)


이런 비난과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끔찍한 전쟁의 참상이 남긴 상처를 견디지 못한 캐빈 카터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3개월 뒤 자신의 트럭안에서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하고 맙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돼(The Death of Kevin Carter: Casualty of the Bang Bang Club)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게 됩니다.

결국 그가 찍은 사진은 전 세계에 아프리카 오지의 수단에 대한 관심을 불러와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 목적이 수단까지 정당화 시키진 못한 셈입니다.

오늘 캐빈 카더의 이야기를 떠 올리게 된 것은 한국의 대표 신문이라는 조선,중앙,동아 일보들이 보여주는 갈짓자 행보가 그의 사진과 죽음에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들을 정부보다 앞장서서 '괴담'이라 칭하고 나선 조선일보의 말바꾸기가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지만 조선일보는 '자신들은 말바꾸기를 하지 않았다'며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광우병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해 왔을 뿐이라고 항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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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조선일보 사설(http://www.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1020770257)


이런 조선일보의 이중적인 태도에 화가난 국민들은 조선일보 구독 사절에 이어 광고 게재 기업에 대해 항의까지 하며 실력행사를 하고 있지만 조선일보는 오히려 그 배후에는 '좌파세력"이 있다며 "각종 루머와 음해·비방에 적극 대응하겠다"라고 선언해 자사 신문의 잠재적 독자들과 한판 대결이라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입니다.

또한 조선일보에 질세라 촛불집회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동아일보는 상인들의 입을 빌어 촛불집회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고 있는지 보도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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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7010032


하지만 이 기사를 본 문정동에 사는 한 대학생은 스스로 직접 상점들을 방문해서 조사한 결과 ‘촛불시위와 매장의 매출액감소의 연관성에 대해 12곳에서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답했고 2곳은 조사거절, 1곳은 “약간의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는 결과를 발표해서 동아일보의 기사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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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7040033


이 조사 결과가 다른 언론에 보도돼 알려지자 처음 기사를 썼던 동아일보 기자는 원래 기사에는 쓰지 않았던 "전적으로 촛불 시위 때문에만 어렵다고는 말 못하지만"이란 말을 반박 기사에 슬며시 끼워 넣고는 자신은 "기자회견 참석자들의 발언을 충실히 전달"했다고 항변하며 오히려 그런 사실을 지적하는 다른 언론사를 비난합니다.

조선과 동아일보가 이렇게 앞서 나가자 조중동 트리오의 또 다른 맴버인 중앙일보 역시 뒤떨어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길거리에선 연일 촛불집회가 계속되지만 다른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직접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파는 식당을 찾아 기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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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기사에 등장하는 미국산 쇠고기를 즐기는 사진속 식당 손님들이 중앙일보의 경제부 기자와 대학생 인턴 기자인 것이 밝혀지자 발빠르게 이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이란 것을 싣습니다. 아무래도 중앙일보는 철면피함이나 적반하장으로 뻔뻔함에서는 조선,동아일보에 비해서는 한 수 뒤쳐지는 하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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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누구도 모든 신문이 똑같은 시각으로 실험보고서를 쓰듯 기계적 객관성에 기초해 기사를 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사 개개의 구별되는 논조가 있고 그에 따른 다른 시각의 기사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것이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있고 정부를 옹호할 수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기 때문에 결국 각 신문사의 논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자기 성향에 따라 자발적으로 각 신문의 독자가 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거기에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밑받침 되어야 하고 진실에 근거한 자기 논지만이 사람들이 신문을 신뢰할 수 있게 하는 기본 전제 조건이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몇년동안 꾸준히 견지해 오던 주장을 하루 아침에 뒤집고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며 정반대의 말을 한다거나 처음엔 쓰지 않았던 말을 슬며시 새 기사에 끼워 넣고는 자신들은 "참석자들의 발언을 충실히 전하는 보도"를 했다고 우기고, 기자를 손님으로 가장해 기사를 작성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의 대표 언론(?)들의 모습들을 공정한 언론사의 논조라고 하기에는 너무 천박할 뿐만 아니라 신문 기사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사실(Fact)에 기반을 둔 진실성마저 부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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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만을 보도하는 서우진 기자는 특정사실과 아무 관련 없음을 밝힙니다.(From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MBC)


더구나 일선에서 발로 뛰는지 머리속에서 상상으로 뛰는지(?) 모를 기자들의 이런 고의적인 왜곡은 과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기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합니다. 그들은 이런 비난에 자신은 쉰내나는 비빔밥속에 남은 싱싱한 나물이라고 주장하고 싶을지 몰라도 안타깝게도 쉬어버린 비빕밥에서 상한 밥과 싱싱한 나물을 골라 먹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독자들에겐 그냥 쉰 밥에 쉰 나물일 뿐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찍은 사진에 쏟아진, 수단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괴로와 하던 캐빈 카터를 한국의 조중동 기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차라리 이런 기사를 쓰는 조중동의 기자들보다는 "오히려 나의 글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입는것은 아닐까? 라는 후폭풍을 생각해봤습니다. 만약 누군가 다치고 괴로워 한다면 저 역시 무척이나 괴로울 것 같네요"라고 말하는 문정동 대학생이 더 책임있는 언론인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조중동 신문들이 한번쯤은 새겨 보아야 할 자신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위의 기사를 쓴 기자들이 아직도 자신들이 책임있는 언론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글이 알려진 후에 송파구 소상인 위원회 부위원장을 "직접 찾아가서 인사드렸습니다. 혹 저 때문에 더 심란하시진 않을실까 걱정이 되서요"라고 말하는 그 대학생처럼 책임있게 행동한 적이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