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계시는 고수민님이 한국에서 뭇매 맞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라는 글을 쓰셨습니다. 그 글이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미국 의료 보험 제도를 다루었다면 환자가 될 수 있는 일반인의 시각에서 미국 의료 보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 글이 사람들에게 미국의 의료 제도를 옹호하는 듯이 비추어져서인지 블로그가 무차별 댓글 폭격을 받아 진주만에 가라앉은 전함 아리조나호처럼 처참한 몰골이 되어 버렸더군요.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하지 못합니다. 어서 빨리 충격을 극복하시고 계속 좋은 글을 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같은 의료제도를 놓고 의사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과 환자가 될 수 있는 일반인의 시각차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느쪽의 시각이 옳고 그른지는 자신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받은 청구서와 보험 가입시 받은 보험료 납부 자료를 가지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미국의 의료비는 무척 비쌉니다. 한해에 파산신청하는 가계의 50%에 해당하는 약 200만명의 사람들이 의료비 부담으로 파산 신청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예라 하겠습니다. 비싼 의료비외에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내에 4천6백여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의료보험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무보험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의 1/7에 해당하는 숫자로 미국 정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지난 미국 담배 회사의 두 얼굴에 서 이야기 한대로 부시 대통령은 극빈층 바로 위 계층에 해당하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정부 의료 보조를 확대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서 법안을 무력화 시키기도 했기 때문에 현재 미국 정부가 해결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다음 대선을 위해 나선 민주당의 힐러리가 선거 공약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을 내걸 정도로 미국의 의료 보험 문제는 심각한 문제 입니다.
고수민님이 말씀하신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한푼도 내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대상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극빈자 계층은 치료를 받고 돈 한푼 내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치료비 청구서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 나 몰라라 했다가는 평생 신용불량자가 되어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멕시코에서 암 치료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텍사스로 밀입국 한다고 하셨는데 요즘은 조금 사정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불법체류자가 많은 주 중에 하나인 텍사스는 그동안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는 체류신분에 관계없이 치료해 주었지만 얼마전 부터 휴스턴 인근의 캘베스톤에 있는 University of Texas 대학병원이 합법적인 체류신분이 아닌 사람은 치료를 거부하기로 방침을 바꾸면서 그 환자들이 휴스턴으로 몰려 비용이 전가될 것을 우려한 휴스턴 병원들의 반발이 거셉니다. 아마도 UT 병원의 선언을 시작으로 불법체류자에 대한 치료거부가 확산 될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물론 극빈자가 아니라도 말씀하신 것처럼 병원비 청구서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도 멀쩡할 방법이 있긴 합니다. 미국에서 병원비는 납부 시한이 없으므로 병원과 협상을 해서 일정액을 감면 받고(Charity Program) 나머지를 평생 조금씩 갚는다거나 안 내고 버티다가 추심회사로 넘어간 후 역시 컬렉션 회사와 협상을 해서 일정액만 내고 종결 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대하기 힘들고 후자의 경우는 크레딧에 심각한 손상이 오게 되기 때문에 파산 신청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평생을 두고 갚게 됩니다. 실제 미국 병원들이 치료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일부는 40%가 넘고 대개 10%는 넘는다고 합니다. 그 손실분은 바로 의료보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시 전가되서 보험료 인상의 한 요인이 됩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각 보험 회사들은 보험료는 해마다 자꾸만 인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자료는 올 9월 보험을 갱신하는 대상자들에게 배포된 월별 납입 보험료 자료입니다. 이 보험료 자료는 Texas 주정부에서 운영되는 기관의 종사자들에서 제공하는 직장 보험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자격으로 사는 일반 보험보다 보험료가 조금 저렴하고 혜택은 더 좋습니다.
이 보험은 상품에 따라 옵션도 다양하고 보험혜택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하게 보험료가 얼마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대강 보면 종업원 자신과 가족이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선 대략 한달에 $800-$1200(80만원-1백2십만원)정도의 돈이 보험 회사에 납부되야 합니다. 그 중 일부를 해당 기관이 보조하고 보험 종류에 따라 나머지 $500-$900(5십만원-9십만원)정도를 종업원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회사는 직원 한 사람당 $300(3십만원)정도의 보험료 부담을 지게 됩니다.
이렇게 각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보험료도 만만치 않지만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 또한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직원에 대한 복지후생이 잘 된 큰 회사의 경우에는 회사가 더 많은 부분을 부담해서 종업원들이 좋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지만 해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보험료 때문에 요즘은 그 혜택을 줄여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직장에서 의료보험을 부담해 주는 경우는 사정이 조금 나은 편입니다. 자기가 보험을 사야하는 자영업자나 회사 보조가 적은 영세한 회사에 다니는 경우에는 한달에 $1000(백만원)에 달하는 보험금의 부담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인구의 1/7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의료 보험을 사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의료보험이 없는 경우에는 얼마나 되는 의료비를 내야 할까요? 2002년과 올해 발행된 출산에 관련해서 청구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두 청구서는 같은 병원, 같은 의사에게서 2002년과 2007년에 똑 같이 질식분만한 경우에 발행된 청구서와 아기가 출산후 첫번째 2주차 검사에 대한 청구서입니다.
사실 청구서가 복잡해서 처음 한번 보곤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위의 청구서를 간단하게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똑같은 질식분만임에도 2002년 약 $2000(2백만원)하던 진료비가 2007년에는 $3500이(3백5십만원) 되었습니다. 또 이 금액은 산전 검진비와 출산 전후 병원 입원비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모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최종 병원비는 이 금액보다 더 많습니다.
보험 적용후 금액은 보험 마다 다르기 때문에 동등비교는 어려워도 비보험 적용 금액과 비교해 보면 보험이 필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보험료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차선책은 자기부담금이 높은(Deduction) 싼 보험을 사는 것인데 이 경우 대부분 자기 부담금과 함께 나머지의 금액의 몇 퍼센트는 환자가 부담해야 합니다.자기 부담금 $1500(백5십만원), 그 나머지 치료비의 20%만 본인 부담하는 보험 상품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맹장 수술로 대략 $2만불(2천만원) 정도의 치료비가 나올 경우 $1500(백오십만원)의 자기 부담금을 내고 남은 $1만8천5백불(천5백만원)의 80%는 보험회사가 병원에 지불하고 나머지의 20%인 $3700(3백7십만원)을 본인이 부담하면 맹장 수술로 환자가 지불해야 하는 총 병원비는 $5200(5백2십만원)이 됩니다. 여기서 예로 든 보험 상품은 비록 본인 부담 비율이 다양하긴 해도 월 납입비가 싼 보험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맹장 수술시 치료비 부담 예
이렇게 보험이 있다해도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 상당히 큽니다. 그 이유는 처음에 언급한 대로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의료비에 있습니다.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납부하고 똑같은 보험혜택을 받는, 사회보장제도 성격이 강한 한국의 의료보험과 소득에 관계없이 나이와 질병 발병 가능성에 따라, 자신의 형편과 목적에 맞는 다양한 보험혜택을 가진 보험을 선택할 수 있는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반 환자 입장에서는 한국 의료보험이 제공하는 상대적으로 싼 의료비가 비용 측면에서는 최소한 미국의 의료 보험제도 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당장 환자가 부담해야 몫이 비교 할 수 없이 적으니까요.
물론 미국의 의료보험중에서도 한달에 많은 보험료를 내는 상품들은 한국의 의료보험과는 비교가 안 되는 좋은 보험 혜택을 주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의료보험은 그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 보험이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P.S:
1) 의료 보험이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글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 주시면 기꺼이 수정하겠습니다.
2) $1=1000원으로 계산했습니다.
3) 고수민님께서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엉망이어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보험이 없으면 치료를 못 받는다고 극단적으로 잘못 알려진 내용을 지적하시기 위해 그 분 또한 극단적인 예를 들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거론하신 내용은 모두 사실이지만 이는 공적 부조의 개념인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극빈자 계층에게만 가능한 예이고 대부분의 경제 활동을 하는 미국 사람들은 이 글과 같은 의료 보험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잡글 Lv.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미국 토네이도(Tornado) (48) | 2008.02.18 |
---|---|
국민에게 공짜로 돈 나눠주는 미국 (43) | 2008.01.26 |
짝퉁 명품 팔다 딱 걸린 미국 월마트 (10) | 2008.01.12 |
이건 어느 나라 말일까요? (8) | 2007.12.18 |
미국에선 자신도 모르게 '나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85) | 2007.12.11 |
천원샵 삼성필름의 정체 (14) | 2007.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