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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문화

이젠 김상경,김지수가 부럽지 않습니다.

한달쯤 전에 차례로 본 한국 영화에서 다음 장면들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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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하악 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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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김지수 주연 "가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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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주연 "조용한 세상"


위의 세 장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카메라가 등장한다"하시는 분은 대략 평균적인 눈썰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정답은 "모두 같은 카메라가 등장한다"입니다.
바로 Rollei 35라는 35mm 필름 카메라가 소품으로 출연한 장면입니다.

그 동안 이 카메라를 무척 가지고 싶어 해 왔기 때문에 영화를 보다 위 장면에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바로 지름신이 왕림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지름신께서는 제 안에 잠자고 있던 구매 충동을 일깨워 주시려고 저 영화들을 차례로 보게 하신 것 같습니다.

김지수가 나온 "가을로"에서는 영화가 시작하자마다 첫번째 장면에 스텝들 이름 자막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나오더군요. 그리고 혹시라도 못 봤을까봐 친절하게도 영화 중반쯤에 다시 한번 등장했습니다.  그래도 '왠 Rollei가 영화에 소품으로 등장하나?' 하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며칠 후 보게된 김상경 주연의 "조용한 세상"에서는 절대 지나치지 못하도록 아예 풀샷으로 잡고 친절하게 필림 감는 장면까지 보여주면서 저에게 "질러라"를 외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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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니 꿈틀대는 구매 본능을 도저히 그냥은 잠재울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ebay로 잠복에 들어갔습니다. 오래전부터 사고 싶어하던 물건이라 배경 조사는 이미 완료된 상태였고 현 시세를 알아보려고 몇번 비딩에 참여해 본 결과 요즘 시세는 소장용이 아닌 촬영용은 대략 $125 - $175에 shipping and handling $10 정도에 낙찰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욕심 같아서야 돈을 조금 더 주고라도 Carl Zeiss Tessar 렌즈가 달린 Made in Germany나 Made in Singapore을 사고 싶었지만 그동안 이것 저것 팔아 Paypal에 모아두었던 $130이 동원 가능한 현금 전부라 눈물을 머금고 $125.51로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ebay에 생소하신 분은 왜 $125도 아니고 $125.5도 아닌 $125.51은 뭘까 궁금해 하실텐데 ebay에선 1센트라도 높은 사람에게 낙찰이 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 심리가 $125혹은 $125.5 이렇게 딱 떨어지게 써 넣고 싶어하는 것을 나름대로 역이용한 꽁수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효과를 발휘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17전 18기 끝에 전용 플레쉬와 Tamrac 가방을 포함해서 Rollei Made Tessar lens가 달린 Made in Singapore을 shipping까지 합계 $113.10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이걸로 사진을 찍던 사람이 파는 물건이고 Rollei 35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저속 셔터도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서 만족입니다. 거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Rollei 전용 플래쉬와 가방까지...Good Deal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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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966년부터 독일에서 생산된 오리지날 "Rollei 35" 카메라는 Carl Zeiss Tessar 렌즈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1971년 공장을 싱카폴로 이전하고 나서 독일에서 만든 재고 Carl Zeiss Tessar 렌즈를 사용한 카메라는 계속 "Rollei 35"란 이름으로 1974년 8월까지 생산하고(칼짜이즈 테사 렌즈가 부족해서 몇달 동안 S-Xenar lens를 사용한 변종이 생산되긴 했음), 공식적으로 1974년 9월 부터 Rollei가 라이센싱해서 해서 만든 Rollei made Tessar 렌즈를 쓰는 카메라는 "Rollei 35 T", 그리고 새로 만든 Sonnar HFT lens 렌즈를 사용하는 카메라는 "Rollei 35 S"로 다른 이름을 붙여 생산하게 됩니다.
기존의 Tessar 렌즈는 최대 개방 조리개가 f/3.5였지만 "Rollei 35 S"에 사용된 새로 만든 Sonnar HFT lens는 f/2.8로 더 밝은 렌즈(한국) 혹은 Fast lens(외국)이고 멀티 코팅이 되어 빛의 산란이 거의 없어 "Rollei 35 S"를 Rollei 35 시리즈의 최정상이라고들 말합니다.

이런 Rollei家의 족보에 비추어 이번에 산 Rollei 35를 판단해 보면 약간 이상합니다. 카메라에 새겨진 이름은 분명 "Rollei 35" 인데 렌즈는 칼짜이즈 테사가 아니고 Rollei made Tessar 입니다. 공식적으로는 1974년 9월 이후 Rollei made Tessar 렌즈가 장착된 "Rollei 35 T"가 생산되었는데 이 카메라는, 렌즈는 Rollei made Tessar이면서 이름은 칼짜이즈의 테사렌즈를 쓴 "Rollei 35"인 것입니다. 그래서 뒷면의 시리얼을 확인해 보니 3,466,963으로 1971년 6월부터 1974년 8월까지 생산된 카메라의 시리얼 번호인 3,312,000 - 3,499,999의 후기 시리얼에 해당이 됩니다. 짐작컨데 Rollei에서 테사 렌즈를 라이센싱해서 만들고 나서 "Rollei 35 T"란 이름을 붙이기 전에 잠깐 이전에 쓰던 "Rollei 35"란 이름으로 생산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 카메라는 1974년 4월이나 5월경 생산되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그럼 영화에 사용된 카메라는 어떤 것일까요? 궁금증은 풀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스틸컷을 확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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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에서 김지수가 들고 있는 카메라는 이름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Rollei 35 S"인 것 같습니다. T나 후기 버젼에 붙는 SE,TE 두 글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카메라는 싱카폴에서 Sonnar HFT lens를 달고 1974년 9월 이후 생산된 Rollei인 것 같습니다.

"조용한 세상"에서 김상경이 카메라를 가르쳐 달라는 여자 아이에게 건네는 카메라에는 선명하게 "Rollei 35"라는 이름이 보이고 렌즈에도 Carl Zeiss라고 새겨진 것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카메라는 초기 독일 생산품 이거나 1971년 6월 이후 싱가폴에서 생산된 모델일 것입니다. 일설에는 독일에서 생산된 Rollei 35의 뷰파인더는 정면에서 보았을때 거울처럼 비치며 파인더를 통해 보았을때 더 밝은 상을 보여주고 싱가폴에서 생산된 모델은 정면에서 보았을때 뒷쪽 눈으로 들여다 보는 뷰 파인더 창이 작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뷰 파인더에 김상경의 얼굴이 비치는 걸로 봐서 이 모델은 독일제 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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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칼짜이즈의 테사 렌즈를 사용한 카메라가 더 좋은가 아니면 롤라이에서 라이센싱해서 생산한 테사렌즈가 더 좋은가 하는 물음에는 싱가폴 롤라이의 품질관리가 엄격해서 두 렌즈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입니다. 그리고 Sonnar HFT lens는 f/2.8의 밝은 렌즈로 칼라 사진의 색감을 잘 살려주는 것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갖게 됐으니 이젠 사진을 찍는 일만 남았나 봅니다. 정말 이젠 김지수,김상경이 안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