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Lv. 3
우리 기업들이 따라 하고 싶을 미국식 해고
Ikarus
2010. 3. 13. 08:10
미국 정부에서는 지난 2월 통계에서 실업률이 드디어 10% 아래로 떨어지고 실업급여를 신청한 실직자 수가 2주 연속 감소추세라고 발표했지만 지난 주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동료직원까지 정리해고를 당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1,2%에 불과한 실업률 감소는 별 의미없는 통계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회사 경영진에서는 제가 일하는 부서는 아무리 경기가 나빠도 꼭 유지해야 하는 핵심부서라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공언 했지만 막상 느닷없이 해고 하는 것을 보니 역시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새상 느끼게 됩니다.
열심히 해고한 덕분에 근무시간에도 썰렁해진 사무실
지난 포스팅에서도 정리해고 당한 다른 부서 직원 이야기를 썼지만 그 후에도 계속적인 정리해고가 이루어져서 이제는 제가 처음 입사했을때 일하던 직원의 1/3 이상이 회사를 떠난 것 같습니다. 같은 회사의 다른 지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별반 사정이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지난주 회사가 발표한 분기별 실적 발표에서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줄었는데도 당기순이익은 도리어 22%나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열심히 일해서 이윤을 늘린 것이 아니라 직원들을 대량으로 해고해서 비용을 줄인 것으로 당기순이익을 끌어 올린 꼴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실적 발표를 전후해서 회사 주식은 반짝 올랐더군요. 결국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시도때도 없이 부러워하며 주장하시는 "고용 유연화"를 통한 이윤 창출이 실체적으로 실현된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걸 보니 정말 돈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세상인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You are FIRED!!
더구나 지난주 정리해고 당한 중국인 동료는 제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인데다가 그 해고절차가 너무나 어이없이 간단해서 더욱 우울해 집니다.
그날 아침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출근 한 그에게 매니저가 이것 저것 몇가지 업무지시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오전 11시쯤 돼서 느닷없이 인사과 직원이 올라와 그 친구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몇가지 서류작업을 끝낸 후 출입증을 반납하고 짐을 꾸려 그 친구는 회사를 떠났습니다. 2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안에 이루어진 전광석화 같은 이 해고 절차가 과연 몇년동안 열심히 일한 직원에게 온당한 대접인가 싶기도 하지만 미국 직장내에서는 지금까지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에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이 떠나고 난 빈자리가 지켜보는 마음 만큼이나 어수선합니다.
사전 통고도 없고, 예비 기간도 없는 이런 해고 절차는 130년 이상된 오랜, 미국 사회의 관행이고 주에 따라 조금씩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도 인정되는 관습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자유의지에 따른 고용"(Employment at Will)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원칙은, 고용계약서에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면 고용주와 피고용자 양측 모두가 어떤 이유에서나, 심지어는 아무런 이유 없이도 고용관계를 일방적으로 끝낼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얼핏보면 고용주와 피고용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매우 합리적인 원칙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용주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아무때나 고용관계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줘서, 최고 수준의 고용 유연성을 보장하는 아주 "비지니스 후렌들리"한 정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비지니스 후렌들리한 고용 관계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를 그만 두더라도 먹고 살 걱정이 없다거나, 사방에서 스카웃해 가려고 안달이 난 걸출한 인재라면 아무때나 회사를 그만 둘 수 있는 권리가 권리로서 의미가 있겠지만, 안간힘을 써 간신히 직장을 잡고 상하좌우로 전전긍긍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무때나 고용관계를 그만 둘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단지 "해고 당할 자유"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 또한 아래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현재 직장에 입사하면서 작성한 고용서류에 고용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는 "at will employment" 형태의 고용계약을 수락했기 때문에 회사가 필요하면 언제든, 아무 이유없이도 해고될 수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회사에 입사하면서 작성한 계약서에도 명시된 해고의 자유~
19세기 말에 정립된 이런 고용관계가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이 어이없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체계가 선호하는 고용관계가 예나 지금이나 변화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하면 어쩜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1950년대 이후 노조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경제 환경이 변화하면서 연방정부와 각 주 정부들은 이 고용원칙에 법률적인 예외 조항들을 두기는 했지만 현재도 미국내 7개 주(Alabama,Georgia,Louisiana,Maine,Nebraska,New York,Rhode Island)와 플로리다(Florida:회사 이익에 반하는 법적 증언에 대한 보복적 해고 금지 조항은 인정)에서는 연방법으로 정한 차별금지 조항에 위배되지만 않는다면 제한없이 해고할 수 있는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고, 그 이외의 주들은 약간의 법률적인 제한을 두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가 아무리 고용주가 아무때나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해고당한 피고용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계가 걸린 직장을 한 순간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잃는것까지 받아 들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을 해고한 기업을 상대로 한 수 많은 소송이 있어 왔고, 이런 법정 소송들은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이윤의 극대화를 방해하는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해고의 자유보다 더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연구하게 되고 그 결과로 정규직을 대신하는 임시직의 확대, 시간제 파트타임 고용계약은 물론 아예 산업 및 서비스를 하청 주거나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극단의 조치까지 도입하게 됩니다. 계속적인 이윤 창출의 극대화를 꾀하는 미국 기업들의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들이 추구하는 고용관계와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삼성 광주전자의 제품운송을 하는 극동컨테이너 소속 기사에게 발송된 해고 문자 메시지 출처: http://gjdream.com/v2/photo/view.html?uid=350231&news_type=602&paper_day=&code_M=6&list_type=602
비록 법원에서 무효로 판결나긴 했지만, 핸드폰 문자로 해고 통보 하는 우리 기업들은 오히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미국 기업들에 뒤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본 조지 클루니 주연의 "Up in the Air" 라는 영화에는 해고 통지를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회사(Outplacement)에서 출장 경비마저 줄이겠다며 , 화상 채팅을 이용한 원격 해고 통지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록 영화적 상상력이 동원된 설정이긴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핸드폰 문자 해고 통지가 떠올라 영화 속의 원격 해고 통지 시스템은 차라리 인간적인 시스템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한 원격 영상 해고 시스템
영화적 상상력보다도 더 비인간적인 해고방법을 선뜻 시도하는 우리 기업들이 시도때도 없이 목놓아 부르짖는 "고용의 유연화"는, 미국의 "Employment at Will" 같은 자유로운 해고 정도로는 성이 안 찰지도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피고용자를 소모품처럼 소비해 이윤의 극대화를 달성하려는 미국의 고용문화와 공통의 목표를 가진 이음동의인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