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Lv. 3
고유가 시대를 맞은 미국의 반응 백태
Ikarus
2008. 6. 3. 19:42
긴 글에 붙는 세 줄 요약이 이번엔 다섯 줄 요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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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미국에선
1. 새 차를 사면 790원/리터에 기름을 넣어주겠다는 마케팅이 등장했습니다.
2. 10년이 넘은 중고 경차 가격이 처음 판매가의 절반으로까지 판매되고 있습니다.
3. 비싼 휘발유 대신 집에서 직접 자동차 연료를 만들수 있는 장치까지 나왔습니다.
4. 감자튀김을 하고 남은 폐식용유를 훔쳐가는 도둑이 극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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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ilpricewatch.com/
안 그래도 가뜩이나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로 뒤숭숭한데다가 기름값까지 올라 살기 팍팍한데 무슨 염장 지르는 소리냐고 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제가 한국을 떠나올때 리터당 1200원 하던 휘발유 가격이 2100원이 됐으니 75%인상 된 것이지만 그때 제가 살고 있는 텍사스는 갤런당(약 3.8리터) $0.97(256원/리터)하던 것이 이제는 갤런당 $3.85(1017원/리터)으로 거의 4배가 올랐으니 인상폭만 놓고 보아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직 미국 전국 평균은 6월 2일 현재 갤런당$3.98(1051원/리터)로 $4(1056원/리터)에 약간 못미치게 턱걸이를 하고 있지만 이 수치는 다만 미국 평균일 뿐 이미 많은 지역에선 $4불을 넘어 섰습니다.
물론 아직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인상폭이 훨씬 크기 때문에 생활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한국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이 한국에 비해 낙후된 땅덩이 넓은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 인상은 출퇴근이나 장보기 같은 일상 생활에 줄일 수 없는 고정적인 추가 부담을 늘게 하기 때문에 가중되는 가계 부담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앞 주유소의 가격판이 이신바예바가 장대 높이뛰기 기록을 갱신하듯 일주일에도 두세번씩 바뀌는 것을 보면서, 느는 것은 한숨이요 주는 것은 지갑 두께이니 도대체 얼마나 더 오르려는지 끝도 보이지 않아 암담하기만 합니다.
하늘을 향해 도약하는 동네 주유소의 5월 29일 가격표
이미 분위기는 갤런(약 3.8리터)당 $5(1320원/리터)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심한 경우에는 $8(2113원/리터)까지 오를지 모른다는 비관론까지 들리는 것을 봐선 앞으로 당분간 계속 기름값은 고공행진을 계속 할 것 같습니다.
작년 5월부터 올해까지 1년동안 주별 미국 평균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조사해서 나름대로 회귀분석 해 본 결과로는 휘발유는 9월 중순경에, 경유는 7월 말경에 갤런당 $5(1320원/리터)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휘발유의 경우 6월 중순에 $5을 넘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어 그 시기가 더 빨리 올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 선에서라도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진정되길 기대할 뿐입니다.
이렇게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다보니 미국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여러가지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크라이슬러의 기름값 $2.99 마케팅
그 첫번째가 자신들의 새차를 사면 앞으로 3년동안 갤런당 $2.99 (790원/리터)에 기름을 넣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크라이슬러의 판매 전략입니다. "Let's Refuel America!"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앞으로 기름값이 얼마가 되던 간에 무조건 $2.99에 기름을 넣게 해 주겠다니, 이런 고유가 시대에 정말 귀에 쏙 들어오는 솔짓한 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를 살 것도 아니면서 동네 크라이슬러 딜러샵을 찾아갔습니다. 역시나 딜러샵 입구에 $2.99 광고가 펄럭이고 있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딜러가 자꾸 즉석 할인을 받으면 차 값이 얼마가 된다고만 이야기하지 기름값 $2.99 해주는 것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름값 할인 해주는 프로그램은 어떠냐고 했더니 그건 차 가격을 즉석 할인(Instant Rebate) 받던지 아니면 앞으로 3년간 기름값 $2.99 해주는 기름 넣는 신용카드를 받던지 둘 중에 선택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즉석 할인폭이 작은, 싼 차는 그게 이익일지도 모르지만 할인을 많이 해 주는 차는 그냥 즉석할인 받는 것이 낫다고 살짝 귀뜸해 주더군요. 그러면 그렇지 흙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자동차 회사가 무조건 그런 근사한 혜택을 줄리가 없다 싶어서 돌아오자 마자 자세히 알아 보았습니다.
동네 크라이슬러 딜러샵에 걸린 $2.99 광고
크라이슬러 홈페이지를 찾아 알아보니 이 $2.99 지원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원래 차 값에서 $3000(약 300만원)을 할인해 주는 것을 $1500 (약 150만원)만 할인해 주고 3년간 $2.99에 기름 넣을 수 있는 신용카드를 주는 것인데 여기에는 연간 12,000마일(약 2만km)까지만 지원해 준다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크라이슬러의 SUV인 Durango와 소형차인 Caliber의 실제 주행 연비를 감안해서 계산해 보았더니 아래 표에서 보듯이 기름값이 앞으로 3년동안 $3.85(1017원/리터)에서 $5(1321원/리터)까지 꾸준히 오를 경우 SUV인 Durango는 약 $4000(약 400만원), 소형차인 Caliber는 약 $2000(약 200만원)을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From: http://autos.msn.com/
하지만 여기에 기름카드를 선택하면 포기해야 하는 즉석할인 $1500을 고려하면 소형차의 경우, 실제로는 겨우 $660 (약 66만원)의 혜택만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딜러가 이야기 했던 것과는 반대의 결과에다 막상 할인 혜택도 보기와는 달리 이 얼마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기름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 큰 헤택을 보겠지만 아마도 크라이슬러는 기름값이 어느 정도 선에서 진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이 프로그램을 만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SUV인 Durango는 3년이면 250만원 가까이 기름값을 절약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럼 과연 이게 이익일까를 비교해 보기 위해 도요타에서 생산하는 비슷한 가격의 4Runner와 3년간 누적 기름값 지출액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닷지의 Durango는 기름값이 올라도 갤런당 $2.99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기름값이 많이 절약될 줄 알았는데 도요타의 4Runner와 비교해서 의외로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3년뒤 $2.99 프로그램이 끝나고 기름을 제 값주고 1년간 넣는 경우에는 4년내내 제 값 다 주고 기름 넣은 4Runner와 총 유류비 지출액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4Runner에 비해 떨어지는 Durango의 연비 때문이었습니다. 연비가 나빠서 기름을 많이 먹다보니 기름값을 지원해 줘도 연비 좋은 차와 그 차이가 별로 나지 않고 기름값 할인 혜택이 끝나고 2년만 더 운전하면 오히려 기름값 할인 혜택이 없는 차보다 누적 유류비 지출이 커지는 것입니다.
결국 크라이슬러의 기름값 지원 프로그램은 언듯 보기만 그럴듯한 빛좋은 개살구지, 실제는 자사차의 나쁜 연비를 보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크라이슬러는 작년 2007년 1조 6천억원($1.6bilion)의 손실을 본데다가 올 4월에는 35,000대를 생산 축소하기로 결정하는 등,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를 끌기 위한 획기적인 마케팅 전략상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 같습니다.
2. 고물 Geo Metro의 인기
결국 고유가 시대에는 뭐니 뭐니해도 기름을 적게 먹는 연비 좋은 차가 가장 유리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단종돼 더 이상 생산은 되지 않지만 갤런당 49마일(약 20km/liter)이라는 미국내 판매 차량중에 최고 연비를 자랑하는 중고 Geo Metro의 인기가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From: http://en.wikipedia.org/wiki/Geo_Metro
원래 Geo Metro는 일본 Suzuki와 미국 GM이 공동으로 1989년부터 1997년까지 공동으로 판매하던 배기량 1000cc의 소형차로, GM에 이은 사보레(Chevrolet)가 2001년 판매를 중단하면서 단종된 차지만, 고유가 시대를 맞아 하이브리드카인 도요타의 프리우스(Toyota_Prius)를 능가하는 훌륭한 연비로 다시 각광 받고 있는 것입니다.
** 엔진과 모터가 동시에 작옹할때
한국 차중에 기아 모닝 수동 트랜스미션과 거의 같은 연비를 내는 Geo Metro는 1997년2-Door의 원래 판매 가격이 $7000(약 700만원) 수준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요즘, 상태에 따라 $2000에서 $4000 선까지 거래되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난 1997년식 현대 소나타가 $ 2000 이하의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엔진과 바퀴 밖에 없다는 이 조그만, 연비 좋은 소형차의 인기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Geo Metro 중고차 매물 가격(Ebay)
3. 직접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 쓴다.
연비 좋은 중고 Geo Metro가 인기 몰이를 하는 한편으로 아예 자동차 연료를 집에서 만들어 쓰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 연료 제조기도 등장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몰래 팔리던 신나와 톨루엔을 섞은 유사 휘발유 제조기가 아니라 물과 설탕 그리고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켜 연료용 에탄올을 만들어 내는 장치입니다.
From: http://www.efuel100.com
E-Fuel Corporation이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Micro Fueler"라는 이 가정용 연료 에탄올 제조 장치는 설탕과 효모를 물에 섞어 기계에 넣고 1주일을 기다리면 연료로 쓸 수 있는 100%의 알콜 135리터를 (E100 ethano)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톤당 $190(약 19만원) 가량하는 싼 브라질산 공업용 설탕을 사용할 경우 한팩에 $16(약 16,000원)하는 전용 이스트를 섞어 발효시키면 갤런(약 3.8리터)당 약 $2(530원/리터)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연료 알콜을 얻을 수 있다니 시중 휘발유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셈입니다.
에탄올 차량이나 다연료 차량(flex-fuel)의 연비가 떨어진다는 주장에 대해 이 회사에선 자신들의 Micro Fueler에서 생산된 연료용 알콜을 휘발유에 섞어서 사용할 수도 있고 심지어 물과 7:3의 비율로 섞어 그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경제성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초기 구입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올 12월경부터 일반에 판매하는 예상 가격이 $9,995(약 1,000만원)에 달해 도요타 4Runner 같은 비교적 연비좋은 SUV의 3년치 기름값에 해당하는 비싼 금액입니다. 회사측에서는 연방정부의 세금감면 혜택을 받으면 결국은 $6,998(약 700만원)이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비싸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천정부지로 기름값이 오르는 상황이라서 비싼 초기 투자비용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다면 매력이 있어 보입니다.
더구나 순도 100%에 가까운 에탈올이 만들어진다니 자동차에 넣고 남은 것은 물을 타서 소주나 위스키로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을 것 같아 주당들에겐 꽤 괜찮은 선택일 것도 같습니다. 단 음주운전은 안 되겠죠 :)
4. 맥도날드나 버거킹의 다 쓴 폐식용유를 훔쳐가는 도둑들
집에서 연료를 직접 만들어 쓰겠다는 극단적인(?) 아이디어와 대비되는 또 다른 모습은 맥도날드나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감자 튀김을 만들고 버리는 폐유를 훔쳐가는 도둑들입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앞질러 가파르게 인상되고 있는 미국에서 경유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디젤(biodiesel)의 수요가 늘고 지난 2000년 파운드당(약 450g) 7.6센트(약 76원)하던 바이오디젤 원료 가격이 요즘 33센트(약 330원)으로 4배이상 크게 오르자 바이오디젤 연료를 제조하거나 되팔기 위해 식당 뒷마당에 쌓여 있던 폐식용유를 훔쳐 가는 것입니다.
폐식용유를 도난당한 피자가게 아저씨 From: http://www.nytimes.com
이렇게 도난 당해 팔려간 폐식용유는 그리 어렵지 않은 공정을 거쳐 바이오디젤 연료를 재탄생되서 바이오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에 쓰이거나 일반 경유에 첨가제로 섞어 사용한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석유 가격이 치솟자 이렇게 전에 없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미국의 반응은 어쩌면 3억이 채 안되는 인구가 전 세계 석유의 40% 이상을 소비해 대던 왕성한 식욕(?)을 감당하지 못해 벌이고 있는 해프닝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투기 자본에 의한 석유 가격의 조작이 해소된다 하더라도 세계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석유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해결되지 않는다면-해결될 가능성도 없어 보이지만- 이런 미국의 일들은 미국만의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쩜 우린 이미 심각한 문제에 빠져 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